이봉수 런던대 박사·경제저널리즘
경제전망대
지난해 5월 ‘고려대 사태’가 터졌을 때부터 이 ‘전망대’에서 세 차례나 삼성과 정부에 ‘호소’했다. 삼성의 편법 경영권 상속과 한국사회 지배 문제를 ‘사회공헌 활동’과 ‘커뮤니케이션 강화’로 덮지 말라는 거였다. 결국 바위에다 축원하기였나? ‘8000억 사회헌납’이 발표되자, 분위기가 확 바뀌고 있다. 민주노동당을 뺀 정치권은 “높이 평가받을 일”(청와대), “국민의 바람을 겸허히 수용한 결단”(열린우리당), “부의 사회환원과 윤리강화를 국민 앞에 약속했다”(한나라당)며 환영일색이다.
삼성 발표에는 전향적 내용도 있다. 그러나 ‘사회공헌’ 계획에 감읍하는 정치권은 특검이든 국정조사든 경제권력 견제 의지가 완전히 허물어졌거나 애초부터 없었음을 드러낸다. ‘15만 삼성 임직원이 근무시간 1%를 사회봉사에 투입한다’는 후속 보도가 나오자, 유시민 보건복지장관조차 삼성에 기대를 거는 발언을 했다. 양극화 해소에 필요한 과세권도 포기하고 정부가 삼성에 의존할 작정인가? 삼성-정부 ‘사전교감설’은 정황증거가 많지만, 이해찬 총리의 형님이 연초 사장단 인사 때 이미 삼성 자원봉사단장에 임명된 것도 예로 들 수 있겠다.
삼성의 ‘커뮤니케이션 활동’ 목표는 <중앙일보>를 보면 언제나 명쾌해진다. ‘삼성의 변신 노력에 합당한 평가 있어야’ 한다는 사설(8일치) 한 편만 분석해보자. 이 사설은 ‘삼성 견제와 비판은 사회와 의사소통 부족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며 ‘국민정서라는 애매한 잣대로 삼성 때리기에 골몰한다면 이 땅에서 배겨날 도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정서가 결코 법치를 앞지를 수 없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국민정서가 우선한다’고도 했다. 이 사설은 논리는커녕 ‘왜 경제권력이 언론권력을 끼고 있으면 안 되는지’를 웅변한다.
삼성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법 준수를 바라는 국민정서가 법치에 어긋난다고 말하는 것은 ‘국민모독’이다. 국민정서 때문이라면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증여 사건의 유죄판결은 이른바 ‘국민정서법’ 몇 조에 걸린 것인지 답해야 한다. 삼성 비판은 이 회장 말처럼 “부덕의 소치”가 아니다. ‘불법의 소치’다. 국민의 요구는 ‘법의 허점을 파고들지 말고 법 정신을 살리라’는 뜻일 게다. 언론사와 막강한 홍보조직, ‘변호사 중대’ 없이도, 다른 재벌들이 훨씬 조용하게 굴러가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볼 일이다. ‘너무 유능한’ 측근들과 중앙일보의 과잉충성이 삼성의 지배 문제를 키우고 이 회장 일가마저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건 아닐까?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에는 밝은 면과 함께, 그 공로가 기업주에게 돌려지고 필요한 국가 역할마저 축소되는 등 어두운 면이 있다. 자유주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도 자선사업의 한계를 인식하고 “정부가 과감히 개입해 과세권으로 빈민을 구제하라”고 했다. 그는 “스스로 벌지 않은 재산이야말로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제한돼야 한다”며 상속세 중과를 옹호했다. 기업 종사자들은 총수의 비리를 몸으로 때우는 대신 열심히 일해 세금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사회복지의 전달은 국가에 맡기는 게 낫다. 사회사업 대상자들은 형평 원칙 아래 조용한 지원을 바라지만, 기업인은 생색나는 곳에 화끈하게 지원해 기부효과를 극대화하려 한다. 로마의 거부였던 아우구스투스도 세금은 쥐꼬리만큼 냈다. 개선장군으로 돌아온 그가 사재를 털어 로마를 재건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하자 시민들은 열광했다. 공화파는 “그가 궁궐로 가는 길을 돈으로 사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의 황제 즉위식이 공화국의 종말임을 개탄하는 시민은 많지 않았다.
이봉수/영국 런던대 박사과정·경제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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