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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주문모 신부를 돕다

등록 2021-12-23 18:16수정 2021-12-24 02:31

[나는 역사다] 강완숙(1760~1801)

정부가 금지한 불온사상을 몰래 모여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들을 제대로 학습시킬 지도자를 보내달라고 외국에 요구하기도 했다. 불온사상의 이름은 ‘서학’, 요즘 말로 천주교였다. 종교색을 지우고 민족주의도 빼고 이 시기를 바라보면 어떨까.

중국인 주문모의 밀입국은 1794년 섣달, 양력으로 12월24일이었다. 밀입국을 도운 사람은 윤유일과 지황, 숨겨준 사람은 최인길이다. 1795년에 체포조가 들이닥쳤을 때 대신 잡혀가 고문받고 죽은 것도 그들이다. 체포조가 간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준 사람이 있었다. 정부의 비밀회의에 참석한 정약용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한때 서학을 연구하다 전향을 선언하고 정부 쪽 사람이 된 그다.

그다음은 밀사와 밀정의 싸움이었다. “교회는 중국에 밀사를 파견하고 임금은 밀정을 심었다.”(정민) 밀사의 이름은 황심이었다. 신분은 양반인데 마부로 변장하고 1797년 중국에 갔다. 밀정은 조화진이다. 정조가 직접 골라 서학 조직에 심었다. 그런데 정조가 죽은 후 자기가 정부 쪽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길이 없었다. 영화 <무간도>는 흥미로웠지만 현실은 잔인했다. 조화진은 훗날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1801년에 대규모 검거가 시작됐다. 많은 사람이 고문받고 목숨을 잃자 주문모는 자수하고 처형되었다. 청나라 국적의 신부를 조선 정부가 죽인 일은 외교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수배 중이던 황사영은 조선 정부의 인권 탄압과 주문모의 죽음을 알리는 밀서를 중국에 보내려고 했다. 유명한 ‘황사영 백서’다. “그의 절박한 절규는 요즘의 유엔에의 탄원서 제출과 같은 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박노자) 그런데 조선 정부는 상황을 역이용한다. 외세의 개입을 요청하는 뒷부분만 편집해, ‘가백서’를 만들어 사상 탄압의 명분으로 사용한다.

1795년부터 1801년까지 주문모가 숨어 지내던 곳은 강완숙의 집이었다. “양반가의 서녀”였던 그는 “마이너리티로 태어나 마이너리티로서의 삶에 대해” 곱새겼을 터이다.(이규원) 사상범을 돕고 스스로 사상범이 된 것도 그래서였으리라. 강완숙의 용기를 생각하며 그 얼굴을 상상해 빚어보았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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