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서울대 정문 앞으로 차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555@hani.co.kr
[기고] 박은선 | 변호사·전 고등학교 교사
대학 평등 교육권에 대한 헌법소송을 꿈꿨다. ㄱ국립대로 전학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한 ㄴ국립대 학생이나, ㄷ국립대 합격증으로 ㄹ국립대 입학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한 이를 대리해, 그 거부의 취소를 구하며 관련 규정의 위헌을 주장하고 싶었다. 또,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되는 국립대가 돈을 받고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교육권 침해라는 헌법소원도 대리하고 싶었다.
뭔 헛소리냐고? 이것이 가능한 나라는 충분히 많다. 유럽 고교생들은 대부분이 합격하는 ‘졸업자격시험'만 통과하면, 몇몇 직업을 경험하거나 여행하며 자신을 돌아본 뒤 원하는 대학, 원하는 전공에 진학해 국가로부터 용돈까지 받으며 공부한다. 대학과 전공 변경도 별반 어렵지 않다. 바로 ‘국립대 평등 교육권’의 보장 때문이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이미 1972년에 ‘국립대 학습에의 균등한 참여권 및 평등하게 대학에 입학할 권리’가 기본권임을 선언했고, 프랑스 교육법엔 “모든 바칼로레아 취득자(고교졸업 자격자)는 국립대에 입학할 권리가 있다”고 쓰여 있다.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국가로부터 원하는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받으면서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그때부턴 책임이 따른다. 2019년 프랑스의 한 의대는 입학생 1500여명 중 338명만을 진급시켰다. 네덜란드 대학에서 유급생은 등록금을 내야 한다. 그리고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선, 한 국립대의 어느 전공에서 탈락하면 다른 어떤 국립대에서도 동일 전공을 공부할 수 없다.
경쟁의 무의미한 유예가 아니다. 의사에게 일정 능력이 요구된다면 이를 위한 경쟁은 자신과의 경쟁이어야 하니 진급 내지 의사시험은 절대평가이고, 승패의 기준은 전공이어야 하니 고등학교 삼각함수 점수가 아닌 의대의 해부학 점수로 탈락 여부가 결정된다.
우리의 대학은 왜 이렇지 않을까. 그 근본 원인은 ‘대학의, 대학 입학의 문 앞에 선 이들을 경쟁시켜 일부만 선발할 권한’을 인정하는 고등교육법에 있다. 그래서 국립대의 경우만이라도 고등교육법의 해당 규정이 위헌임을 주장하고 싶었다. 자칫 합헌 결정이 나와, 현 명문대·명문학과 입시 중심의 비뚤어진 우리 초중고 경쟁 교육에 면죄부를 줄까 싶어 차마 실천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꿈꿨다. 헌법소송이 공론화된 어느 날, 어떤 대선 후보가 내가 그걸 정책으로 실현하겠다고, 대학 입학의 문을 ‘자격시험화’하겠다고 나서는 꿈을. 과도기적으로 김종영 교수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서울대 10개 만들기’부터 시작하겠다거나, 궁극적으로 김누리 교수의 ‘4대 폐지’(대학서열·대학입시·대학등록금·특권고 폐지)를 현실화해내겠다고 하는 꿈을.
그러던 중, 최근 한 대통령 후보의 ‘수능 자격시험화’ 공약 뉴스에 놀랐다. 헌법소송의 수고 없이 꿈을 이루나 심장이 뛰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수능‘만’의 자격시험화였다. 그건 대입을 ‘내신전형만’으로 하는 것일 뿐인데. 모든 대입 전형을 자격시험화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는데. 게다가 내신전형은, 옆자리 친구와 경쟁이라 더 잔혹한 ‘오징어 게임’이고, 2025년 전면 실시될 고교학점제하에선 고1에 경쟁이 집중될 수 있는데(고교학점제에선 고2, 3 내신은 절대평가지만 고1 내신은 상대평가). 또, 대학들이 대체 뭘로 뽑느냐며 대학별고사를 부활시킬 수도 있는데. 실망하던 중 그마저 ‘오보’라고 했다.
그저 오보였을까? 해당 캠프는 정말 ‘진정한 자격시험화’, ‘대학 평등 교육권’을 고려조차 안 해본 걸까? 아니길 바란다. 사실은 이거라며 이제라도 진정한 교육대전환, 교육혁명의 비전을 보여주길, 다른 후보라도 그래 주길 바란다.
“경쟁은 경쟁을 낳아 결국 유치원생까지 경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국민에게 설득시켰다. 학교는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교양을 쌓는 과정이다. 그리고 경쟁은 좋은 시민이 된 다음 일이다.” 핀란드 전 국가교육청장이 했던 이 말을, 지금 어느 후보라도 해주길 바란다. “일단 시민이 된 뒤 경쟁하자”고. “일단 아이들이 행복한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국립대 평등 교육권 보장’을 위한 정책부터 실현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