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0월2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민정 | 법조팀 기자
“어떻게 보도를 할 만한 사건이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 있나요? 기자님은 그 판단이 맞는다고 확신하나요?”
지난해 12월3일치 이 지면에 칼럼이 실리고 한 독자에게서 메일을 받았다. 칼럼은 제보를 받고 미적대다가 제보자와의 관계가 껄끄러워졌던 일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 제보자의 사건이 ‘뚜렷한 이상 정황이 없어서 보도할 만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썼다.
솔직히 말하면 칼럼이 나가고 난 뒤 ‘의도와 다르게 너무 단정적으로 읽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독자로부터 그런 반응의 메일을 받으니 아픈 곳을 찔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단지 표현을 지적당해서 아픈 건 아니었다. 표현과 별개로 나 또한 속으로는 ‘내가 기사 가치에 대해 제대로 판단을 내리고 있을까’라는 우려를 늘 하고 있었다. 독자의 메일은 나의 그런 심란함까지도 꿰뚫어 본 것 같았다. ‘보도할 만한 사건을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독자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선 이참에 법원 출입기자로 산 시간만이라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여간 법원 출입기자로 지내는 동안 약 450개의 기사를 썼다. 내가 ‘보도할 만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던 기사들은 주로 무엇이었을까? 450개의 기사를 이슈별로 분류하면 사법농단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지배권 부당승계 의혹에 대한 기사가 각각 20여개씩으로 가장 많았다. 일제 강제동원·‘위안부’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부의 입시비리 의혹 관련, 법조일원화와 변호사시험 관련 이슈도 적지 않게 썼다. 나머지 수백개의 기사는 딱히 분류하기 모호한, 그때그때 발생한 사건 관련 기사였다. 이슈별 분류로 보자면 나는 마치 사법권력(사법농단)과 경제권력(삼성 지배권 부당승계)이 얽혀 있는 재판을 주요하게 생각하는 기자인 것만 같다. 그런데….
내가 쓴 기사 목록을 들춰 볼수록 그동안 관심 가져온 ‘보도할 만한 사건’이라는 것이 결국은 ‘인지도’가 높은 사건이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피고인이 유력 인사여서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를 기사화할 수 있는 사건, 사회적 주목도가 커서 기사를 쓰는 것만으로 일정량의 관심을 보장받을 수 있는 그런 이슈들 말이다. 사실 일정이 빡빡한 법원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사건들만 빠짐없이 챙기는 것도 쉽지 않다. 권력감시 측면에서 유력자의 사건을 꾸준히 쫓아가는 것도 법원 기자의 매우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규모 있고 유명한 사건들만이 법원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니란 점이 어쩐지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할 때도 있다. 서초동 법원으로 한정해도 형사재판만 매일 수백개가 열리는데, 이 가운데 유명 인사의 재판은 전체의 1%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99%는 장삼이사의 사건이다. 말 그대로 그동안 빙산의 일각만 봐온 셈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법원을 찾는 보통 사람들의 사건을 챙겨 보려 하고 있다. 몇달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법원의 다양한 모습을 본다. 일단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하고 나 홀로 소송을 치르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무전취식을 수차례 저질러 구속됐으나 어쩐지 표정은 되레 밝아 보이는 노숙인도 봤고, 남편의 농사일이 어려워지자 보이스피싱 범죄에 뛰어든 국제결혼 이주여성도 봤다. 목 놓아 우는 피해자를 다정하게 달래는 재판장이 있는가 하면, 어려운 법률 용어를 못 알아듣는 피고인에게 삿대질하면서 ‘변호인을 선임해 와라’고 윽박지르는 판사를 보고 나까지 놀란 적도 있다.
‘기사 가치에 대한 판단이 맞는다고 확신하냐’는 독자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엉뚱한 길을 돌아왔다. 여전히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동안 봐온 것이 아주 작은 빙산에 불과했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는 말씀은 전해드리고 싶다. 빙산이 워낙 거대해 전체를 보겠다고 말할 순 없지만, 조금씩 아랫부분을 탐색해보겠다는 다짐과 답장이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씀도 함께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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