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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1967, 2019-홍콩, 두개의 분수령

등록 2022-02-06 18:01수정 2022-02-07 02:02

지난 2019년 6월4일 저녁 홍콩섬 빅토리아 공원에서 열린 천안문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30주년 추모집회에 참석한 홍콩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홍콩에서 ‘6·4 촛불집회’가 열린 것은 이 때가 마지막이다. 홍콩/AP 연합뉴스
지난 2019년 6월4일 저녁 홍콩섬 빅토리아 공원에서 열린 천안문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30주년 추모집회에 참석한 홍콩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홍콩에서 ‘6·4 촛불집회’가 열린 것은 이 때가 마지막이다. 홍콩/AP 연합뉴스

[특파원 칼럼] 정인환 | 베이징 특파원

지난달 31일 홍콩 법원은 ‘선동적 온·오프라인 표현물’을 소지·배포한 혐의로 킴 창(41)에게 징역 8개월형을 선고했다. 홍콩 ‘형사죄행조례’ 9~11조가 규정한 이 혐의로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것은 영국 식민지 시절이던 1967년 이후 처음이다.

창은 지난해 6월 홍콩 신계 틴수이와이 지역 유치원 부근에 3차례, 고등법원 부근에 1차례 등 모두 4차례 ‘선동적인 표현물’을 부착했다. 또 선동적인 내용이 담긴 온라인 포스터 48개를 ‘디지털 형식’으로 소지하고 있었다. 그가 소지·배포한 ‘선동적인 표현물’은 집회·시위 참여를 독려하거나, 홍콩보안법 전담 재판부와 경찰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1938년 발효된 ‘선동적 표현물’ 소지·배포 혐의가 가장 광범위하게 적용된 것은 1967년 폭동 때다. 지금은 홍콩을 대표하는 부동산 재벌이 된 리카싱이 운영하던 조화(가짜꽃) 공장에서 그해 4월 시작된 노동쟁의가 들불처럼 번졌다. 당시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고무된 홍콩 내 친중파 진영은 사제폭탄까지 동원해 무차별적 혼란을 부추겼다. 초기 우호적이던 여론은 무고한 희생이 이어지면서 돌아섰고, 사태는 연말께 진정됐다.

언론인 게리 청이 쓴 <67폭동―홍콩 전후 역사의 분수령>(2009년)을 보면, 2차대전 종전 이후 최대 규모로 평가되는 당시 사태로 폭탄공격 희생자 15명을 포함해 모두 51명이 목숨을 잃었고 832명이 다쳤다. 그해 말까지 체포된 4979명 가운데 1936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가운데 209명이 선동적 표현물 소지·배포 혐의였다.

무모한 공세에 나섰던 친중파 진영은 사태 이후 긴 침묵에 들어갔다. 폭동의 근본 원인을 홍콩 사회의 현실에서 찾은 식민당국은 개혁에 나섰다. 1971년 여성·미성년 노동자의 주당 최장 노동시간이 48시간까지 단축됐다. 1972년엔 초등 무상교육, 1978년엔 9년 의무교육제가 도입됐다. 공공임대주택·빈민구제 사업 등도 시작됐다. 청이 이 사건을 ‘분수령’이라 부른 이유다.

2019년 6월 시작된 송환법 반대 시위도 ‘분수령’이었다. 장기간 광범위한 저항을 지속시킨 원동력은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가 만들어낸 ‘절반의 민주주의’를 뛰어넘겠다는 홍콩 시민의 열망이었다. 그해 11월 말 구의회 선거에서 범민주파가 거둔 압도적 승리가 이를 웅변한다.

2019년의 결과는 1967년과 달랐다. 2020년 6월 말 홍콩보안법이 발효됐다. 2021년 3월엔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을 내세우고 선거법이 개정됐다. <홍콩 프리프레스>가 정리한 지난 1월의 상황은 홍콩의 오늘을 극명히 보여준다.

지난해 6월 <빈과(핑궈)일보>, 12월 <입장신문>에 이어 지난달 2일 인터넷 매체 <시티즌 뉴스>가 폐간을 선언했다. 4일엔 초우항텅(37) ‘애국민주운동 지지 홍콩시민연합회’(지련회) 부주석이 천안문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희생자 추모를 위한 연례 ‘6·4 촛불집회’ 참여를 독려한 혐의로 징역 15개월형에 처해졌다.

지난해 2월 홍콩보안법 위반(체제 전복) 등의 혐의로 무더기로 기소된 친민주파 정치인과 활동가 47명 가운데 30여명이 1년째 수감 중이다. 당시 함께 기소됐다가 넉달여 만에 보석으로 석방된 청년 정치인 오언 초우(24)는 ‘국가 안보를 해칠 수 있는 발언’을 이유로 지난달 12일 재수감됐다. 보석 기간에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 경찰의 강경 진압을 비판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 화근이었다.

지난해 말 6·4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조형 작품 ‘치욕의 기둥’을 기습 철거했던 홍콩대는 지난달 29일 또 다른 상징물을 가리기 위해 칸막이를 설치했다. 33년 전 교내 스와이어 다리 부근 도로에 쓴 뒤, 홍콩대 학생들이 해마다 6·4 무렵 다시 쓰기를 반복해온 글귀다. “냉혈한 학살에도 열사의 영혼은 영원하며, 악의 종말을 위한 민주주의의 불꽃은 불멸하리라.”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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