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가 끝나고 무거운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오려는데 정하의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찾고 있으니 스무살 남짓한 발달장애여성이 자기가 감췄다면서 도로 갖다주었다. “그분은 왜 그랬는데요?” 내가 묻자 정하는 슬프고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가지 말라고.”
탈시설 운동의 상징인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의 장애인시설 향유의집(옛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은 지난해 4월 문을 닫았다. 지난해 3월30일 시설 폐쇄 직전의 모습. 김포/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홍은전 | 작가·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2008년 김포에 있는 장애인시설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비리와 인권유린 문제가 터졌다. 시설에서 살던 사람들은 바깥의 인권단체들과 힘을 합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서울과 김포를 오가며 집회와 농성을 이어갔다. 1년여의 긴 싸움 끝에 결국 책임자가 처벌받고 운영진이 교체되었다. 반찬이 나아졌고 노골적 폭력도 사라졌다. “그리하여 장애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마무리될 줄 알았던 그 이야기는 2009년 여름 갑자기 판이 뒤집힌다. 기를 쓰고 시설에 맞서 싸운 사람들이 시설 환경이 개선되자, 보란 듯이 그곳을 박차고 나가버린 것이다. 노숙을 할지언정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겠다는 장애인들의 탈시설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해 봄 어느 날 탈시설 활동가 김정하는 지난 1년간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을 만나기 위해 김포 양곡리로 찾아갔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이들은 요양원 앞 작은 공원에서 커피를 한잔씩 타 들고는 둘러앉았다. 정하가 어렵게 입을 뗐다. “이제 나오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바깥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노숙농성을 하면서 우리가 그걸 만드는 싸움을 해봅시다. 믿고 결의해주시면 저희도 끝까지 가 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정하는 긴장한 채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기약도 없는 노숙이라니, 혹여 노여워하시지 않을까? 싸우면 정말로 살 집이 생기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잠깐의 침묵 뒤에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나, 할게요. 그러자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그렇게 8명이 그 자리에서 싸움을 결의했다. 많은 걸 설명해야 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2021년의 정하가 말했다. “얼마나 걸리는지,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런 질문 하나 없이 알았다고, 좋다고, 디데이가 언제냐고, 그것만 물으셨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날의 이야기는 맥심 커피가 식기도 전에 끝났지.” 그들 사이에 신뢰가 얼마나 단단했으면 그런 엄청난 결정을 그토록 가뿐히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싸우면 대책이 마련될 거라 예상했느냐고 묻자 정하는 망설임 없이 아니, 하며 웃었다. “다만 될 때까지 싸우겠다고 생각했지.” 이상하게 정직하고 애틋해서 과연 믿음직스러운 말이었다.
2002년 장애인권단체에서 일하던 정하는 강원도 어느 시설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 철문을 밀고 쳐들어간 그곳에 발달장애인들이 기둥과 방문에 묶여 있었다. 묶인 사람이 그 자리에서 볼일을 보자 다른 입소자가 세워져 있던 대걸레로 스윽 닦더니 다시 그 자리에 세워두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처참한 환경이었다. 조사가 끝나고 무거운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오려는데 정하의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찾고 있으니 스무살 남짓한 발달장애여성이 자기가 감췄다면서 도로 갖다주었다. “그분은 왜 그랬는데요?” 내가 묻자 정하는 슬프고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가지 말라고.” 아… 나는 탄식했다. 정하는 가야 했다. 후속 조치를 해야 하니까. 그 후 시설은 폐쇄되었고 입소자들은 다른 시설로 분산되었지만, 정하는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시설 문제는 도처에서 팡팡 터져 나왔다. 어느 정신요양원에서 만난 알코올의존증 남자는 말했다. 우리는 돌아갈 집도, 나가 살 방법도 없는데 당신들은 돌멩이만 던지고 떠나면 끝입니까.
나중에 정하는 일본의 장애운동가 사이토 겐조를 만났다. 그는 1970년대에 학생운동을 했던 비장애인이었는데, 어느 날 장애인시설에 갔다가 그 참상을 보고 충격에 휩싸였다. 얼마 후 그는 리어카를 끌고 그곳에 다시 가서 나가고 싶다는 장애인 네명을 태우고 곧장 나와 버렸다. 그 후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살면서 ‘차별과 싸우는 전국공동체연합’을 만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찔렸는지 몰라.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그때 생각했지. 나는 좀 겁쟁이다….” 정하가 아직도 사라진 신발을 찾고 있는 것처럼 읊조렸다. 내가 아는 가장 헌신적이고 용감한 겁쟁이 언니는 2005년 탈시설 운동단체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을 창립했다.
2009년 시설을 뛰쳐나온 8인의 노숙투쟁은 두달간 이어졌고, 그 결과 한국 사회 최초의 탈시설 주거정책이 만들어져 꾸준히 확장되어왔다. 정하는 놀라운 우여곡절 끝에 8명이 뛰쳐나왔던 바로 그 시설 속으로 들어가 대표가 되었고 거주인의 탈시설과 시설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나갈래요” 하고 외칠 수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신발을 감추는 사람, 혹은 그조차 할 수 없는 사람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 탈시설의 선례를 만들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