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시간 안배를 잘못한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단순 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이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냥 의지도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하고 방송 6개사가 공동 주관한 지난 11일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지역언론 정책에 관한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언론과의 소통 계획과 지역언론에 대한 정책을 같이 물었는데 소통에 대한 의견만 밝혔기 때문이다.
다른 후보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길어야 10여초, 미디어 바우처 이야기가 살짝 나왔지만 후보들 모두 추상적이고 모호한 원론적인 수준의 발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표가 될 만한 이슈를 슬쩍 던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모르쇠로 표변하는 간보기 정책이 난무하는 이번 선거판에서 기자협회가 주최한 토론회였기에 그나마 지역언론에 관한 질문이라도 등장한 것이라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 뿐이었다.
이렇게 인구의 절반이 사는 지역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을 접할 때면 깊은 무력감에 휩싸인다. 지역언론의 문제를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한가한 공공성 타령으로 치부하는 시선을 접할 때면 맥이 풀린다. 또 지원과 규제가 균형을 맞춰야 하는 정책 문제를 돈 몇푼 더 달라는 요구로 치환하는 논의를 볼 때면 희미한 전투력마저 사라진다. 그럼에도 지역에 거주하는 지역민의 한 사람으로서 숙명처럼 마지막 남은 의지를 다지게 된다.
지난 1월 말 <미디어오늘>에 문재인 정부의 언론미디어 공약을 평가한 보도가 나왔다. 부문별로는 시민참여·미디어교육 영역의 이행률이 가장 높았고, 지역언론 부문에서는 지역신문지원특별법이 일반법으로 전환돼 낙제점을 면했지만 대체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 항간의 이야기처럼 문재인 정부의 언론정책은 자유방임 아니면 무관심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였다. 더 큰 문제는 각 정당의 차기 정부 미디어정책 공약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정책적 무관심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파적 이해관계 탓에 사회 갈등은 깊어지고, 민주 시민적 역량은 퇴보하는데도 미디어 관련 정책이라면 제2의 <오징어 게임>을 염두에 둔 산업적 관심에 집중돼 있을 뿐이었다.
콘텐츠 산업 육성에서 접근하는 미디어정책은 일관된 비전을 토대로 미디어 생태계 전반의 역할과 차이를 고려해야 하는 저널리즘과 공적 책무를 둘러싼 정책에서는 정교함이 떨어진다. 차기 정부의 미디어정책 공약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했던 근래 몇몇 세미나들에서도 비슷한 지적과 우려가 나왔다. 각 정당의 공약에는 미디어 관련 기구의 통합 또는 독립 기구 설치 이외에 이렇다 할 미디어정책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지역언론 정책은 없다는 것이 맞을 정도로 미미했다. 지역미디어 생태계의 역학을 충분히 파악하지 않은 채 업계의 민원성 사업에 가까운 정책이라는 것이 냉정한 평가였다.
통상 정부의 지역언론 정책은 지역신문과 마을미디어에 집중된다. 아주 작은 마을 단위의 미디어가 지역성 강화의 명분에 맞는 지역언론이라는 암묵적 전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신문의 역할이 막중하고 마을미디어도 나름의 역할이 존재하지만 지역 뉴스 생태계에서 누락해서는 안될 핵심 중 하나는 지역 지상파 방송이다. 지방정부의 막강한 권력 앞에서 비판과 견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 역량과 건강성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지역 공영방송에 관한 지원정책은 많이 간과돼왔다.
부디 차기 정부에서는 지역 지상파가 공영방송으로서 공적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책을 강구해주기 바란다. 전체 지상파 정책 안에 뭉뚱그려서는 안 된다. 독립기금 확보만이라도 성사돼야 한다.
한선 |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