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해결총연합회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누리집 ‘배드파더스’를 비공개로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 접수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임재성 |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배드 파더스’가 다시 시작된다. 판결까지 받았음에도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해 양육비 미지급 사건을 해결해내는 홈페이지로 유명세를 떨쳤던 배드 파더스는 지난해 10월 문을 닫았었다. 배드 파더스가 만들어낸 공론화 효과로 양육비이행법이 개정되었고, 지난해 7월부터 양육비 미지급자들에 대해 신상공개, 운전면허 정지, 출국금지 나아가 형사처벌까지 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달라진 제도를 믿었던 것.
배드 파더스(양육비를 미지급하는 ‘나쁜 엄마’도 있기에 ‘양육비 안 주는 사람들’로 이름 변경)가 다시 운영되는 이유는 법 개정으로 시행되는 조치들이 실효적이지 않고, 특히 신상공개는 사진이나 직장명이 없기에 누군지 제대로 알 길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배드 파더스는 다시 사진과 주소, 출신학교까지 표시된 미지급자 신상을 공개했다. 여론은 우호적이다.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다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 의로운 일로 평가한다.
이 글에서 배드 파더스 자체에 대해 논하지는 않고자 한다. 다만 필자 입장을 간략히 밝히면, 진실을 말하는 것이 죄가 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반대한다. 같은 이유로 배드 파더스가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것에도 반대한다.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학대 범죄임에도 정책과 제도가 너무나 부족했기에 배드 파더스 같은 운동이 등장했다. 독일 사례처럼 국가가 양육비를 선지급하고 이후 채무자에게 후조치를 하는 것이 효과적인 해결책이라고 본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수치형(명예형)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실천이다.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고 수치를 주는 방식으로 범죄자를 처벌하고, 범죄를 예방하며, 의무를 이행하게 만드는 것이 수치형이다. 우리 사회는 수치형을 효과적이며, 나아가 정당하며 필수적인 수단으로까지 인식하고 있다. 근대 형사법 체계에서 추방되었던 수치형의 귀환이며, 배드 파더스도 결국 넘실대는 주홍글씨 시대가 만든 사례이다.
한국 사회의 수치형 귀환은 엄벌주의로 유명한 미국의 영향을 받아 2000년대 성범죄와 관련된 신상공개로 시작되었다. 같은 시기 기소도 되지 않은 피의자 및 고액체납자에 대한 신상공개로 이어졌다. 2015년 병역기피자 신상공개, 2021년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신상공개가 최근 입법사례이다. 음주운전자에 대한 신상공개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점점 더 많은 범죄와 위법행위에 신상공개가 제도화될 것이고, 여론의 환영도 잇따를 것이다.
수치형의 효과는 확실하다. 채권추심업자들이 채무자 직장에 찾아가 돈 달라 소리치는 관행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유통속도가 인류 역사상 최대치인 지금 더욱 그러하다. 누구나 ‘평생 박제’될까 두렵고 공포스럽다. 배드 파더스는 양육비가 지급되거나 지급 약속이 있으면 공개된 신상을 삭제한다. 그러나 한번 인터넷상에 공개된 신상은 절대 특정 홈페이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수단의 효과와 정당성은 전혀 별개의 판단이어야 한다. 그러나 신상공개는 별다른 논의 없이 그 효과만으로 정당성이 의제되고 있다. 배드 파더스 사건에서 가장 분석해야 할 지점은, 제도의 미비로 민간 차원에서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도된 신상공개가 정작 제도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법적 수단으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행정제재와 형사처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국가가 그 권한을 사용하면 되지 왜 신상공개까지 하냐고 하는 상식적인 의문은 등장하지 않았다. 신상공개라는 수치형은 점점 지배적 처벌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03년 청소년 성매수자에 대한 신상공개 규정을 합헌으로 판단했지만, 9명 중 5명의 재판관은 위헌 의견을 밝혔다. “공개적으로 범죄인의 체면을 깎아내려 그에 대한 대중의 혐오를 유발하고 그 결과 세인의 경멸과 사회적 배척이 가해지도록 하는 수치형”은 “범죄인을 (…) 한낱 범죄 퇴치의 수단으로 취급하고 그를 대중의 조롱거리나 경멸의 대상으로 만들어 필경 사회적 매장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이며 결국 “사회 전체에 인간존엄성에 대한 불감증을 만연시킬 수 있다”는 것이 위헌의 이유였다. 범죄자에게,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재가 필요하다는 점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다만 그 수단은 반드시 문명과 인권의 수준에 부합해야 한다. 수치나 경멸, 조롱이 수단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