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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미크론 제주 상황

등록 2022-03-06 17:59수정 2022-03-06 19:28

[서울 말고] 이나연 | 제주도립미술관장

코로나에 걸렸다. 정확히는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제주에서도 하루 평균 1000명 이상의 확진자가 꾸준히 생기던 상황이라, 이젠 주변에 누가 걸려도 이상하지 않은 날들이었다.

증상이 시작된 건 2월21일 월요일 저녁이었고, 미세먼지가 있어 목이 칼칼한가 보다 정도의 느낌부터였다. 22일 오전, 잠에서 깨니 몸살 기운이 있었다. 직장에 반차를 신청하고 가까운 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를 했다. 열이 없어서 비염약을 처방받았다. 직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양성 소견 문자를 받았다. 위양성일 수 있으니 소견서를 받고 근처 보건소에서 유전자증폭(PCR·피시아르) 검사를 다시 하라는 안내였다. 보건소 대신 가까운 한라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집에서 격리를 시작했다. 월요일은 회의며 모임이 어찌나 많았는지, 접촉한 이들 모두에게 비보를 전하고, 집에서 침착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사실 차분하게는 아니고 유명한 퀴블러로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를 고스란히 거쳐야 했는데, 부정(그럴 리가 없어), 분노(내가 뭘 잘못했다고!), 타협(나라고 예외는 아니야), 우울(왜 내가…), 수용(그렇구나. 이젠 뭘 해야 하지?)의 감정이 오갔다.

23일 수요일 오전, 제주보건소로부터 기초역학조사 작성 안내 링크를 받았다. 피시아르 결과도 양성이란 뜻이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하루간 이미 퀴블러로스의 5단계를 거쳤기 때문에 아주 담담할 수 있었는데, 마음이 차분해지는 만큼 목은 점점 더 아파 왔다.

24일, 제주도의 하루 확진자 수는 처음으로 2000명을 넘겼다. 월요일에 만난 지인 중에 양성 판정을 받은 이들이 생겼다. 여전히 목이 아팠다. 문고리에 먹을거리를 놓고 사라진 지인이 늘어갔다. 전복죽, 장어덮밥, 생강청, 빵과 케이크, 홍삼까지. 함께 나눠 먹을 사람은 없는데, 먹을거리는 쌓여가는 중에, 무려 제주시청에서도 보급물품을 보내주었다. 중학교 캠핑 이후로 먹은 적 없는 3분카레와 3분짜장을 봤다. 필터식 정수기를 쓰기 때문에 생전 집에는 들여놓지 않는 2리터짜리 삼다수도 생소했다. 하루에 2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줄지어 나오는데 제주시청은 이 업무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 걸까? 피시아르 검사를 받을 때도 느꼈지만, 코로나 관련 업무를 하는 이들은 모두 과로하는 것 같았다. 다들 조금 예민하고 몹시 바빴다. 집 안에 먹을 것은 너무나 많았지만, 비염으로 처방받은 3일치 약은 떨어졌다.

25일, 컨디션이 훨씬 좋아졌지만 아직 목이 아팠다. 비대면으로 제주의료원에서 약을 처방받았다. 비대면 진료를 전화상으로 하면서도 느꼈다. 다들 예민하고 바쁘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25일에 제주에서만 1917명이 확진됐고, 누적 확진자는 2만5727명이었다. 지인에게 부탁해 집 근처 약국에서 처방된 약을 또 문고리 배달 받았다.

26일 아침은 꽤 가뿐했다. 주변 친구 중에 양성 판정을 받은 이가 4명이나 늘었다. 나랑 만났던 일수를 세며 혹시 내가 전파자는 아닌지 셈해보는 날이었다. 내가 바이러스 전파자든 아니든 그쯤 되자 뭐 어쩔 수가 없다는 포기 상황이었다.

코로나 양성 판정 이후로 내가 관리 대상에 포함된 공공기관이 최소 제주보건소, 제주의료원, 제주시청이다. 난 도청 소속 임기제 공무원이기도 하기 때문에, 총무과에서 온갖 복무 관련 관리를 해주고 있었다. 물론 우리 미술관 직원들 전원이 신속항원검사를 받았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만큼 코로나 관련 기관이 한결 붐볐을 것이다.

코로나가 창궐한 2019년 11월부터, 코로나 확진자가 된 2022년 2월 말까지 햇수로만 따지면 4년이 지나간다. 모두들 지쳤다는 표현을 넘어 이 상황에 익숙해졌고, 심지어 코로나에 걸렸다. 그렇다면, 이제 드디어 끝을 점칠 수도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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