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13 17:07
수정 : 2005.02.13 17:07
인도 서부의 나르마다 계곡에 거대한 댐이 들어서려 했을 때 원주민 한 명이 총리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이주보상을 해준다구요? 저 강에 사는 물고기와 강가에서 사는 즐거움까지 보상해 줄 건가요? 그 가격은 얼만가요? 조상이 개간해 물려준 땅과 우리 부족의 수호신에게는 또 얼마의 가격을 매길 거지요?”
환경의 가치를 돈으로 따질 수 있을까. 아마도 인도 총리는 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나르마다 계곡의 이주민들은 가족의 2년치 소득에 1.5를 곱한 금액을 보상받았다. 새만금 지역 맨손어민들도 대개 1~3년치 수입을 보상금으로 받고 대대로 조개 따위를 캐오던 갯벌을 넘겼다. 놀랍게도 비슷한 셈법이다.
최근 천성산 관통터널공사와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해 환경론자들에게 유리한 결정과 판결이 잇따라 나오자 ‘국책사업의 표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환경논란으로 공사가 중단돼 몇천억원에서 몇조원에 이르는 혈세가 낭비됐고, 결국 어려운 경제와 서민 생계에게 타격이 돌아간다며 환경론자를 비난한다. 그런 금전적 손실 계산이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것인지, 또는 오히려 공사중단이 더 큰 손실을 막았는지는 따져보아야 할 문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있다. 환경문제를 지금처럼 경제적 타당성 위주로 접근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환경의 가치를 경제학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새만금 민·관공동조사단 활동에서 잘 드러났다. 사람들은 갯벌을 구경하고 체험하면서 낚시나 조개채취, 사진촬영 등을 한다. 이런 가치를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계산했을까. 연구자들은 설문조사를 통해 새만금 갯벌보호를 위해 세금을 얼마나 더 내겠으며, 몇 시간이나 자원봉사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 얻은 결과를 전국민에게 적용해 그 가치로 삼았다. 이를테면 응답자의 31.6%가 평균 월 3658원씩 내겠다고 했으니, 전국 1500만 가구의 31.6%인 474만가구에 가구당 연간 낼 세금 4만4천원을 곱하면 연간 약 2081억원이란 값이 나온다. 자원봉사는 도시 일용근로자의 임금으로 환산했다. 자원봉사가 첫 해에만 이뤄진다고 봤을 때 갯벌의 인간중심 가치는 첫해에 약 3932억원, 이듬해부터는 2081억원이란 계산이다.
이렇게밖에 할 수 없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지만, 최신의 경제학 기법을 동원한 연구결과이다. 물론 연구자들도 “현재의 과학기술과 경제구조로는 새만금 갯벌이 지닌 총체적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고 인정하고 있다. 경제학이 사람의 욕구와 선호는 측정할 수 있을지 몰라도 요즘의 환경문제에서 중요한 신념과 가치는 잴 수가 없다. 무엇보다 경제학적 접근으로는 미래세대에 물려줄 환경의 가치를 계산해낼 재간이 없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생물에 값을 매기는 일도 매우 어렵다. 환경론자들은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생명은 우리에게 직접 이익이 되든 안 되든 단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존재할 가치가 있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차 의학이나 산업에 쓰일 자원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희귀 동·식물을 보호하는 것과도 차원이 다르다. 환경가치를 경제적으로 잴 수 없다면 보전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무슨 기준으로 판단할까. 신념과 가치의 차이는 결국 서로의 의견을 듣고 배우며 마침내 합의에 이르는 방식밖에는 극복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새만금 삼보일배 순례와 지율 스님의 단식에서 우리는 ‘뭇 생명’과 ‘도롱뇽’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환경가치가 도래하고 있음을 목격했다. 국책사업이 더이상 표류하는 것을 막으려면, 또 모두가 수긍하는 국책사업이 되려면 이런 새 가치관을 ‘환경 일방주의’라거나 ‘근본주의자’라고 덮어놓고 비난하기보다는 본격적으로 사회적 토론의 장에 올려야 할 것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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