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8명이 박차고 나왔던 문제의 시설(석암재단)은 시민사회의 끈질긴 개입으로 운영진이 완전히 교체되면서 인권과 사회 통합을 기치로 내건 사회복지법인 프리웰로 다시 태어났다. 프리웰은 적극적으로 거주인의 탈시설을 지원했다. 그리고 2021년 프리웰 산하 장애인거주시설인 향유의집(옛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이 문을 닫았다. 한때 120명이 빽빽하게 살던 그곳엔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들 모두 지역사회로 돌아와 각자의 집에서 자유롭고 위태로우며 기쁘고도 슬픈 자기만의 삶을 향유하고 있을 것이다.
2009년 ‘마로니에 8인’ 중 한명인 김동림씨와 동료 한규선씨(앞)가 지난해 3월31일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나무 아래 전동휠체어를 타고 김씨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 김포/이정아 기자
홍은전 ㅣ 작가·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2009년 6월4일 김포의 장애인거주시설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살던 장애인 여덟명이 시설을 뛰쳐나와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1년 동안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의 비리와 인권유린에 맞서 싸운 거주인들이었는데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이번엔 탈시설 권리를 요구하며 시설을 박차고 나온 것이었다. 처음 이 노숙 투쟁이 기획되었을 때 장애운동 활동가였던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목숨을 건 혼신의 싸움을 결의한 이들은 수십년 동안 시설에서 살았던 중증장애인들이었다. 먹고 자고 씻는 일과 그것을 지원하는 일이 모두 투쟁인 그런 농성이 될 것이었다. 생각만 해도 벌써 고단한데, 눈치 없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뭔가 아주 획기적이고 아름다운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고백하건대 그때 나는 탈시설 권리를 외치면서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몰랐다. 어느 날 한 선배가 “탈시설 운동은 주거권 운동이야. 집을 달라는 투쟁이지” 하고 말했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열심히 일하는 비장애인도 못 가지는 집을 일도 하지 않는 장애인한테 달라니… 익숙하게 흐르던 생각의 회로가 갑자기 엉켜버린 채 멈춘 기분이었다. 그때 그 선배가 기본권으로서 주거권이나 유럽에 있다는 사회주택제도에 대해 설명해주었는지 아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무언가 내 안에서 세게 충돌했던 감각만은 생생하다.
나는 ‘능력 있고’ 돈 있는 사람이 돈을 주고 집을 사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이었고, 그 논리대로라면 ‘능력 없고’ 그래서 돈도 없는 이들이 집을 가질 수 없는 것 역시 당연하다 여겼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건 바로 장애인들이었다. 내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어떤 질서가 장애인을 시설에 가두고 있었다. 그게 뭔지도 모른 채 세상을 향해 마구 던져댔던 짱돌의 실체를 알았던 순간, 균열이 간 건 내 안의 어떤 세계였다. 멈추었던 생각의 회로가 방향을 바꾸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와… 이 운동 너무 어이없고 너무 신나네…?!’ 왜인지 좋아서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내가 겪어본 가장 ‘빡센’ 여름이었다. 두달 후 이 대책 없이 무모한 이들에 의해 한국 사회 최초의 탈시설 주거 정책이 만들어졌다. 시설을 나와 자립을 준비할 수 있는 집 ‘체험 홈’과 5년까지 살 수 있는 ‘자립생활주택’ 등이 그 내용이었다. 그 후 장애인 8명은 스스로 만든 길을 딛고 지역사회로 나와 집을 얻고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갔다. 그 길을 따라 더 많은 사람이 시설 밖으로 나왔고, 다시 그 길을 넓히기 위한 싸움의 대열에 합류했다. 탈시설 운동은 장애인 차별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운동이 되어 2013년 서울시 탈시설화 추진계획과 2021년 중앙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을 이끌어냈다.
한편 장애인 8명이 박차고 나왔던 문제의 시설(석암재단)은 시민사회의 끈질긴 개입으로 운영진이 완전히 교체되면서 인권과 사회 통합을 기치로 내건 사회복지법인 프리웰로 다시 태어났다. 프리웰은 적극적으로 거주인의 탈시설을 지원했다. 그리고 2021년 프리웰 산하 장애인거주시설인 향유의집(옛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이 문을 닫았다. 한때 120명이 빽빽하게 살던 그곳엔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들 모두 지역사회로 돌아와 각자의 집에서 자유롭고 위태로우며 기쁘고도 슬픈 자기만의 삶을 향유하고 있을 것이다.
동료들과 함께 이 놀라운 역사를 기록해 <집으로 가는, 길>을 냈다. 탈시설이 ‘일부 장애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주장’이라고 축소하면서 ‘정치권에서 강하게 제동을 걸겠다’고 말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이 책을 꼭 읽어주면 좋겠다. 그의 바람과 달리 탈시설 권리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장애인의 보편적 권리이고, 2008년에 이를 비준한 한국 정부는 그것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2009년 6월4일 마로니에공원에서 장애인 8명이 우리를 향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긴장과 설렘, 피로의 예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물결의 시작이었다. 8명이 개척한 길을 따라 모험과 자유의 여정을 시작한 사람이 80명이 되고 800명이 되자 그들의 목소리가 마침내 저 견고했던 차별과 억압의 성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그 꿈같은 일이 실현되는 데 1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향유의집 폐지는 더 큰 물결의 시작이 될 것이다. 2021년 4월30일 한국 사회 최초로 장애인거주시설이 탈시설을 향한 자기 의지로 문을 닫았다. 마지막 시설이 문을 닫기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그들이 온다.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