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코다>의 제작진이 작품상을 받은 뒤 기뻐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박미향 | 문화부장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이 오페라 공연을 관람할 수 있을까? 시각장애인들이 연극을 즐길 수 있을까? 작은 노력만 보탠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를 실제로 증명한 곳이 있다.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ROH) 무대엔 종종 수어 통역사가 배우들과 함께 오른다. 그는 무대에 소품처럼 서서 오페라 배우의 격정적인 노랫소리와 연기를 온몸으로 표현한다. 극의 흐름에 따라 그의 몸짓은 격렬해지기도 하고 차분해지기도 한다. 입 모양도 커졌다가 작아진다. 자막만으로는 오페라의 감동을 오롯이 느끼기 어렵기에 청각장애인들에게 그는 배우만큼 중요한 사람이다. 무대에 오르는 모든 오페라 공연 중 최소 한 회는 수어 통역을 제공한다는 로열오페라하우스는 농인들을 위해 앞자리 좌석 할인은 기본이라고 한다. 농인들이 더 가까이에서 수어 통역사의 몸짓과 표정을 보게 하기 위함이다.
영국 국립극장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설계해두었다. 음성 해설 지원은 기본이고, 공연 전 ‘터치 투어’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터치 투어’란 말 그대로 공연 전에 시각장애인들이 무대 위에 올라 소품, 세트, 의상 등을 직접 만져보고 느껴보는 투어다. 딱딱한 책상은 왜 무대 중앙에 있어야 하는지, 부드러운 벨벳 소파는 극의 전개를 위해 왜 필요한지 등에 대한 설명도 듣는다.
장애인의 문화 접근성을 꾸준히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에 <아무튼, 무대>의 저자이자 공연·무대 매니저 황정원씨는 자신의 책에 이렇게 적었다. “장애가 장벽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길을 찾고, 길을 내는 사람들이 현실에 실재했다. 알면 알수록 놀라운 세상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고작해야 법적 의무 때문에 휠체어석 정도나 설치하는 우리 문화계의 수준, 더 나아가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탑승 시위에 대해 곧 집권 여당이 될 당의 대표가 내뱉은 무개념 차별 언사를 생각하면 개탄스러운 게 우리의 현실이다.
장애인을 위한 작은 노력은 기실 따지고 보면 그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삶은 결코 예상되는 대로 굴러가는 법이 없다. 어느 날 불의의 사고를 당할 경우의 수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더구나 그런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더 많고, 결국 그것들은 우리의 품격을 높여준다. 타인의 어려운 상황에 공감하고, 나아지게 하는 것, 그런 일을 하거나 하는 이를 볼 때 차오르는 자부심과 자긍심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건 한마디로 ‘좋은 일’이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는 한국은 노인이 살기에도 불편한 나라다. 나이가 들면 소리가 안 들리고, 눈이 침침하다. 단지 늙었다는 이유로 볼 수 없는 공연이 생긴다는 건 슬픈 일이다.
지난달 말 미국 할리우드에서 날아온 소식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청각장애인 가족을 다룬 영화 <코다>가 작품상, 각색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샨 헤이더 감독의 <코다>는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농인 부모를 둔 자녀) 루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장애인의 현실과 삶, 가족의 의미를 되새긴다. 대학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싶은 루비는 청각장애인 부모와 오빠를 떠나는 게 부담스럽다. 장애인 가족이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창구가 자신이기 때문이다. 반대에 나선 아빠는 결국 촉각으로 루비의 노래를 느끼고는 딸의 꿈을 응원한다. 시상식에서 농아 배우 트로이 코처가 <코다>로 남우조연상 수상이 확정되자 전세계 영화 팬들은 환호했다. 그를 포함해 <코다> 주인공 4명 중 3명이 농아 배우다. 이제 할리우드는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를 제작하면서 비장애인의 열연을 선택하지 않는다. 수어까지 배워 작품을 준비한 헤이더 감독은 ‘장애가 장벽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길을 찾고 길을 내는 사람들’ 중 한명이다. 대사의 40% 정도가 수어인 이 영화는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한 노력이 결과론적으로 우리의 격을 높여주는 일임을 알려준다.
차별과 멸시의 장벽을 없애는 것, 그리고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나누는 게 의미가 없음을 인지하는 것, 그 모든 것의 종착점은 인간성을 회복한 우리에게 찾아오는 햇살 같은 삶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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