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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체르노빌 사과 사세요~

등록 2022-04-14 18:04수정 2022-04-15 02:38

[세상읽기]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이제, 의사는 남편이 죽어가는 여자에게 위로 대신 이런 말을 한다. ‘가까이 가면 안 됩니다! 입 맞추면 안 됩니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전염도 높은 방사성 물질이에요’라고.”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체르노빌의 목소리>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체르노빌 순국 소방대원의 아내를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는 저 여인의 애달픔을 어림해볼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코로나의 터널 밖 빛이 보이는 지점에 서 있다. 그러나 알렉시예비치는 1986년 4월26일에 폭발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시간의 재앙’이라고 부른다. 방사성 핵종이 10만년보다 더 오래 머물 것이기에.

윤석열 당선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에너지 민간위원 자리가 원전을 주장하는 이들로 채워졌다. 원자력공학자 두명과 재생에너지 비율을 줄이고 원전을 크게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온 경제학자다. 원전 선진국으로 발돋움하여 세계를 선도하겠다고 한다.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땅에서 값싸게 탈탄소를 이룰 성장 동력이라고 추켜세운다. 일조량은 미덥지 못하며 땅값은 비싸 대규모 재생에너지 생산이 어렵고, 선진국들도 원자력을 대안으로 꼽는다고 홍보한다.

과연 최선일까? 천연가스 최대 생산국인 미국에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원자력과 석탄을 제쳤다. 캘리포니아는 재생에너지 비율을 33%로 올렸고, 태양광 발전만으로도 원자력 발전(9.3%)을 앞질렀다. 원전의 경우 9기가 폐쇄되고 1기만 작동하는데 이마저도 3년 뒤 폐쇄다. 대신 태양광과 풍력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비율을 늘려 경제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2030년 재생에너지 비율 60%로 향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유럽 주요 국가들은 탈원전을 선언했다. 독일은 올해 마지막 원전을 멈춘다. 지구온난화 속에서 폭염으로 냉각수인 강물 온도가 올라가면서 프랑스는 원전을 멈춘 적이 여러번이고, 독일과 스위스도 발전량을 줄여야 했다. 최근에 마크롱 대통령이 새 원전 건설을 발표했지만, 이는 대선을 앞두고 발전의 70%를 차지하는 원자력 기득권에게 보내는 정치적 신호이자 프랑스 부활이라는 선거 기치라는 것이 서구 언론의 분석이다. 한국 언론은 프랑스가 탈원전을 포기했다며 크게 보도했는데, 미래 시장을 원자력산업으로 보는 언론사의 경제 전망을 드러냈다고 본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프랑스의 신재생에너지 비중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인 우리의 두배가 넘는다. 우리 언론이 주요하게 참고하는 그 어느 영어권의 보도를 뒤져도 원자력 발전을 경제 동력으로 꼽는 대안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캘리포니아 에너지 전환의 열쇠는 보조금과 규제다. 태양광 패널 설치 비용 일부를 보조하고 전기 판매에 인센티브를 준다. 건물의 옥상, 외벽, 주택의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달고 있다. 우리도 논밭을 밀어 태양광 패널을 심을 것이 아니라 아파트 외벽을 ‘빌 힐 캐슬 포레스트’로 채우지 말고 태양광 패널을 붙인다면?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우리의 연평균 일사량이 태양광 발전 1위인 중국과 같다고 공표했다.

안전한 길이 있는데, 40∼50년 연명할 불안한 길을 가는 이유는 누구를 위해서인가? ‘원전은 안전하다’라는 말을 프랑스, 미국, 일본, 소련 정부도 해왔다. 프랑스와 미국에서는 위험천만한 사고가 초기에 진화되었고 일본과 소련에서는 기어코 벌어졌다. 소련은 붉은광장에 세울 만큼 안전하다고 했지만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 세웠다. 어디에 지었는가가 그 위험도를 증명한다. 작가 마루야마 겐지는 ‘그토록 안전하다면 도쿄에 지어라’라고 일갈했다. 그는 내게 정책을 파헤치면 그 정부가 누구누구를 위해 움직이는지 보인다고 날 선 눈빛으로 말했다. 지방은 전기를 만들어 수도권으로 보낸다. 농사를 지어 수도권으로 보내고 공장을 돌려 가지가지를 수도권으로 보낸다. 사람마저 보낸다. 그럼 적어도 안전한 원자력 발전소는 수도권에 세워 지방에 보답해야 할 것이다.

<체르노빌의 목소리>에는 늙은 여인의 증언이 나온다. “시장에서 우크라이나 여자가 빨간 사과를 팔았어. ‘사과 사세요! 체르노빌 사과 사세요!’ 그러니까 누군가가 조언을 했지. ‘체르노빌 사과라고 하지 마세요. 안 사 가요.’ 그러자, ‘별말씀을요! 잘 팔려요! 시어머니 먹이려고, 상사 주려고 사요’라고 했대.” 누군가 사과를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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