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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동안’ 권하는 사회

등록 2006-02-21 18:36수정 2006-02-21 19:05

권태호 경제부 기자
권태호 경제부 기자
아침햇발
조조가 적장 한수에게 말을 건넨다.

“장군은 금년에 춘추가 어찌 되시오?”

“올해 마흔 되었소”

“우리가 지난날 함께 지낼 때만 해도 젊었는데, 어느덧 중늙은이가 되고 말았구려”

‘쿵!’

<삼국지>를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이 대화를 중학교, 대학교 때는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

얼짱, 몸짱에 이어 이젠 ‘동안’이란다. 설날에는 이름도 요상한 <동안 선발대회>가 방영돼 비정상에 가까운 ‘피터팬’들을 보여줬다. 그것이 도화선이 된 걸까? 신문은 연일 ‘동안 신드롬’, ‘동안 되는 법’(왜 이다지 ‘되라’는 게 많나?) 등의 기사를 쏟아낸다. 인터넷 ‘동안 카페’에는 회원 수가 폭발한다. 말만한 처녀가 미키마우스 아동복 티셔츠를 입고, 2 대 8 유시민 머리가 어울릴 아저씨가 엉덩이 착 달라붙는 청바지란다. “동안이세요”라는 말은 이 시대 최고의 찬사다. 지식인들마저 자신의 글을 기고할 때 싣는 사진을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심지어 20년 전 것을 싣는다. 동안 신드롬은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넘는다. 로리타 콤플렉스의 파생상품인가, 얼짱·몸짱 못 되는 이들의 틈새 마케팅인가?

동안은 ‘젊음’을 찬미하고, ‘늙음’을 차별한다. 저출산·고령화 시대, ‘아이’는 귀해지고, ‘노인’은 늘어나니, 노인은 얼마나 더 뒷방으로 물러나야 하려나? 광속의 시대에 주름살은 인생의 훈장이 아니다. 경험과 지혜의 원천도 아니다. 스팀 청소기 사용법을 며느리에게 물어야 하는 시어미에게, 엑셀 사용법을 후배에게 배우는 선배에게 ‘늙음의 권위’는 없다. 연륜이 낡음으로 치부되는 곳, 오로지 새것과 젊음만이 추앙받는 사회에서 동안 신드롬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칼날 아래 나이들어 보이는 건 결함이 될 수 있다. 이제 누구나 5살 정도는 어려 보인다. 그러니 예전처럼 얼굴이 제 나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정상인’이 비정상으로 뒤처진다. 동안은 경제력과도 비례한다. 신자유주의와 양극화가 동안 신드롬에까지 끼어들었다. 그 다음은 상업주의다. 잔주름과 칙칙함이라곤 현미경으로 봐도 찾기 힘든 이영애가 화장품 광고에서 “30대 여성 65%가 잔주름과 칙칙한 피부를 동시에 고민한다”고 약올리듯 말한다. 안 살 수가 없다.


중년의 동안 신드롬이 개미무덤에 빠지지 않으려는 처절한 발버둥이라면, 젊은층의 동안 신드롬은 그 거친 곳에 아예 발 디뎌 놓지 않으려는 공포의 산물이다. 동안이 상징하는 ‘순수’의 뒷면은 ‘무책임’, ‘의존’이다. 동안 신드롬은 얼굴뿐 아니라, 마음마저 자라지 않으려는 ‘동심 신드롬’으로 번져간다. 1990년 채시라는 “프로는 아름답다”(베스띠벨리 광고)며 당당한 자존감을 내비쳤다. 2000년 아이 얼굴을 한 송혜교는 (거울 보며) “오빠 오는데 이렇게 안 예뻐서 어떡하니?”(드라마 <가을동화>)라고 읊조렸다.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에서 매일 밤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남편은 아내에게 “술이 창자를 휘돌아, 이것저것을 잊게 만드는 것에 나는 취할 뿐이오”라고 답한다. 시간이 흐르면 싫어도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자연’인데, 중력의 법칙을 거부하듯 동안에 취해 불로초 씹는 ‘아이’가 되려 하고, 되라 한다. 안 그래도 피곤한 세상인데.

그나저나, 5년 전 솜씨 좋은 사진사가 선물한, 이 허망한, 동안스런 사진도 석고대죄하며 갈아끼워야 할 텐데 ….

권태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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