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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G2, 지상·해저·우주에서 ‘디지털 네트워크 전쟁’ 벌이다

등록 2022-04-25 17:06수정 2022-04-26 02:09

[박현의 G2 기술패권] _17
미·중의 글로벌 디지털 네트워크 장악 경쟁은 세계 패권 경쟁의 일환이다. 중국은 2013년부터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육로와 해로로 연결해 경제권을 형성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2020년 4월 우방국이나 제3세계 국가들이 중국의 디지털 네트워크에 가입하는 것을 막고 이미 가입한 곳은 계약을 파기하도록 하는 ‘클린 네트워크’ 계획을 발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앞줄 왼쪽 둘째)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2021년 6월11일 영국 콘월의 카비스베이 호텔 해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주요 7개국은 당시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대응하는 ‘더 나은 세계 재건’(B3W) 계획을 발표했다. 콘월/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앞줄 왼쪽 둘째)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2021년 6월11일 영국 콘월의 카비스베이 호텔 해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주요 7개국은 당시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대응하는 ‘더 나은 세계 재건’(B3W) 계획을 발표했다. 콘월/AP 연합뉴스

미국 정보기관인 국가안보국(NSA) 외주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2013년 내부 기밀문서를 폭로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미 정보기관의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정보 수집과 프라이버시 침해, 그리고 동맹국 정상들의 휴대전화 도청 등 많은 논란거리를 던졌다. 그런데 이런 상상을 초월하는 정보 수집 능력은 전세계가 디지털 네트워크로 조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워싱턴 포스트>가 그해 10월31일 스노든이 제공한 기밀문서를 토대로 보도한 내용을 보면, 국가안보국은 전세계에 분산 배치된 구글과 야후의 데이터센터들을 연결하는 내부 광통신망을 해킹해 거기에 저장된 고객정보를 통째로 빼냈다. 이렇게 빼낸 데이터가 매일 수백만건이었으며, 이는 미국 메릴랜드 포트미드에 있는 국가안보국 본부 데이터저장소로 보내졌다. ‘머스큘러’라고 명명된 이 작전으로 한달에 수집하는 데이터가 무려 1억8128만466건이나 됐다. 수집된 데이터에는 전자우편 송·수신자와 시간이 기록된 ‘메타데이터’는 물론 글·영상·음성 등 세부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구글과 야후는 데이터센터의 파손에 대비해 같은 정보를 다른 대륙에 있는 데이터센터에도 복사해 저장해놓고 있다. 이 모든 건 해저케이블로 연결돼 있다. 두 회사는 고객 단말기에서 서버로 오는 과정에서는 정보를 암호화 처리 했으나, 이를 데이터센터로 연결하는 부분은 당시까지만 해도 암호화 처리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국가안보국은 바로 이 지점을 노렸다. 기밀문서에는 데이터 전송 흐름도를 보여주는 ‘구글 클라우드 이용’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그림도 있었다. ‘암호화가 여기서 제거된다’라는 짧은 글과 함께, 구글의 보안을 뚫은 게 자랑스럽다는 듯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도 그려져 있었다. 당시 특파원으로 일하던 기자도 이 그림을 보고 뒤통수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보안이 나름 철저하다고 알려졌던 지메일을 기자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노든 파일은 글로벌 디지털 네트워크의 실체와 그 중요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무선 인터넷도 사실은 디지털 인프라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 실감을 하지 못할 뿐이다. 이 네트워크는 거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정보전과 군사안보 등 전략적 가치도 엄청나다.

미·중은 글로벌 디지털 네트워크를 자국 중심으로 만들기 위한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이 네트워크를 가능케 하는 핵심 기반시설이 해저케이블과 데이터센터다. 해저케이블은 전세계에 데이터를 전송하고, 데이터센터는 이를 저장하는 구실을 한다. 해저케이블은 국제 인터넷 트래픽의 95% 이상을 전송한다. 위성통신에 견줘 대용량 데이터를 저렴한 비용으로 빠른 속도로 전송할 수 있는 강점을 갖고 있다. 전세계에 약 400개가 설치돼 있으며, 총길이는 130만㎞에 이른다. 이를 통해 통신뿐만 아니라, 금융거래도 이뤄지는데 금융 부문에서만 매일 10조달러 상당의 거래가 이뤄진다.

해저케이블은 19세기부터 강대국들의 세계 지배를 위한 핵심 인프라였다. 대영제국 시절 영국이 1860년대 처음으로 대서양에 구리선으로 된 전신케이블을 설치했다. 1902년에는 대서양·태평양·인도양을 횡단해 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영연방 국가를 연결하는 해저케이블을 완성했다. 당시 상업적 용도보다는 제국 통치를 위한 전략적 목적으로 활용됐다. 냉전 시기에는 미국과 소련이 보안을 위해 군 전용 해저케이블을 운용했다. 상대국 해저케이블을 도청하기도 했다. 미국은 1970년대 초부터 오호츠크해에서 소련 해군의 해저케이블을 도청했다. 미 국가안보국은 잠수함을 이용해 해저케이블에 도청장치를 몰래 설치했다. 거의 매달 다이버들이 120m가량 잠수해서 도청장치를 회수했다. 1980년 소련에 망명한 국가안보국 요원의 폭로가 있기까지 이 작전은 계속됐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이 사건이 발생한 지 33년 뒤에 스노든이 훨씬 더 광범위한 도청 실태를 폭로한 뒤 러시아로 망명했다.

현재 세계 해저케이블은 미국과 일본, 유럽이 지배하고 있다. 미국 서브컴이 1위, 유럽 알카텔-루슨트가 2위, 일본 엔이시(NEC)가 3위다. 중국은 10여년 전 도전장을 내밀었다. 화웨이 계열사인 화웨이해양이 2009년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뉴욕과 런던을 잇는 대서양 횡단 케이블 프로젝트 계약을 따냈으나 2013년 미국 정부의 불승인으로 계약이 파기됐다. 그 뒤엔 미국 경유 케이블 사업에는 참여하지 않고 다른 지역에 집중했다. 2018년 아프리카와 남미를 잇는 케이블을 완성했다. 화웨이는 당시 브릭스(BRICS)를 연결하는 케이블이라고 자랑했다. 2018년엔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잇는 프로젝트에 나서 파키스탄-아프리카 동부 노선을 2020년 완공했고, 이후 북서쪽으로는 수에즈운하를 거쳐 프랑스로, 동쪽으로는 싱가포르까지 확장했다. 10여년 만에 미국·유럽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해저케이블망을 구축한 셈이다. 화웨이해양은 단기간에 시장점유율이 10%에 육박하며 세계 4위 업체로 급부상했다.

미·중의 클라우드 서비스 경쟁도 가열되고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는 고성능의 초대형 데이터센터에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를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서비스다. 현대에는 모든 정보가 데이터로 변환돼 전송·저장되고 이것은 빅데이터·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의 밑거름이 된다. 이 경쟁에서 앞서려면 전세계에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많이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지난해 2분기 기준 전세계에는 약 700개의 초대형 데이터센터가 있는데,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 미국 3개 업체가 세계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중국도 알리바바가 2009년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해 현재 점유율 6%로 세계 4위다. 다만 알리바바는 중국 사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미·중의 글로벌 디지털 네트워크 장악 경쟁은 세계 패권 경쟁의 일환이다. 중국은 2013년부터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육로와 해로로 연결해 경제권을 형성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일대일로 연선국이 60여 나라에 이른다. 이 정책의 핵심축 가운데 하나가 ‘디지털 실크로드’ 프로젝트로, 5G 통신망과 인공위성 기반의 위치정보시스템(베이더우), 해저케이블, 데이터센터 등 디지털 기반시설을 패키지 형태로 제공한다. 지상·해저·우주를 무대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특히 중국은 제3세계 국가들을 대상으로 매력 공세를 펴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디지털 세력 확장을 차단하고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0년 4월 5G·클라우드·해저케이블·앱 등 영역을 대상으로 한 ‘클린 네트워크’ 계획을 발표했다. 우방국이나 제3세계 국가들이 중국의 디지털 네트워크에 가입하는 것을 막고 이미 가입한 곳은 계약을 파기하도록 압박하는 작업이다. 미국의 압박은 서유럽 등 전통 우방국들에서는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제3세계 국가에서는 한계가 뚜렷하다. 기술력과 함께 저가를 무기로 한 중국산에 견줘 매력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어려운 탓이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더 나은 세계 재건’(B3W)을 출범시키기로 했다. 주요 7개국이 중·저소득 국가들의 인프라 건설에 수천억달러를 투자하는 프로젝트다. 이 사업에는 디지털 인프라도 포함돼 있다. 미국만으로는 힘에 부치니 주요국과 공조해 중국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미·중의 이런 행보는 코로나19 장기화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 중국의 경우 일대일로 핵심 참여국들인 스리랑카가 이달 초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고 파키스탄도 경제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스리랑카의 경우 국가채무의 10%가량이 중국으로부터 빌린 것이다. 3년째 글로벌 경제교류가 크게 위축된데다 최근엔 유가, 식료품 가격마저 폭등하면서 제3세계 국가들이 경제적 곤경에 빠져들고 있는 점은 중국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미국도 코로나19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은 탓에 재정적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더 나은 세계 재건’ 계획을 발표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 확정된 프로젝트가 단 하나도 없다. 주요 7개국이 모두 국내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벅찬 상황인 탓이다. 세계를 무대로 한 미-중 간 네트워크 전쟁의 승패는 결국 경제적인 지속가능성을 어느 쪽이 더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현 | 논설위원
1994년부터 경제·국제·사회부에서 주로 일했으며, 워싱턴특파원·국제부장·경제부장·부국장 등을 지냈다. 특파원 시절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 미국의 대외정책과 군산복합체 등을 취재했으며, 2015년 미국의 사드 배치 의도를 폭로한 보도로 관훈언론상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알리바바 등 중국 주요 첨단기업과 금융회사들의 발전상을 현장 취재했다. G2의 패권 경쟁이 한국 경제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있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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