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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왜 마스크를 벗지 못할까 / 안영춘

등록 2022-05-04 14:43수정 2022-05-05 02:10

지난 2일부터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지만, 막상 거리에서 마스크 벗고 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해제 시기를 두고 ‘신-구 권력 갈등’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걸 생각하면 머쓱할 지경이다. 아직 초기여서일 수도 있겠으나, 사람들이 제야의 종 카운트다운하듯 마스크로부터의 ‘해방’을 갈구할 거라는 합리적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속옷 벗는 것 같아서’ 유의 말을 흔히 하는 걸 보면, 개인방역 차원의 신중함 때문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마기꾼’(마스크+사기꾼)이라는 신조어는 마스크의 미학적 쓸모를 시사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지난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템플대 연구팀은 얼굴 사진 30개에 마스크를 씌우지 않은 때와 씌운 때 사람들의 반응을 비교했다. 남녀 사진 모두 마스크를 씌웠을 때 매력도 평가가 최고 71%까지 치솟았다. 같은 해 영국 카디프대 연구팀은 좀 더 복잡한 변수로 실험했다. 천마스크와 의료용 마스크를 썼을 때, 노트북으로 얼굴 절반을 가렸을 때를 비교했다. 매력도 효과는 의료용 마스크가 1위, 천마스크 2위였다. 노트북과 맨얼굴은 차이가 없었다.

물론 사람들이 선뜻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2년 넘게 착용해 습관에 가까워진 탓일 것이다. 다만 다소 먼 얘기라 해도, 그 내면의 심연은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50년 복역 끝에 출옥한 브룩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에피소드와 뿌리가 같다. 브룩스는 느닷없이 제공된 ‘자유’를 감당하지 못해 도피한 모양새였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대입해보면, 그는 아무 대책 없이 자유로 내동댕이쳐져 무력하게 고립된 셈이다.

마스크를 벗고 거리에 서면 섭씨 20도 언저리의 공기에서 선뜻함과 섬뜩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다행히 마스크의 시간은 브룩스의 쇼생크 50년보다 훨씬 짧았다. 최근 장애인 탈시설에 대한 공격이 예사롭지 않다. <조선일보>는 탈시설 장애인이 욕창으로 사망했다는 장문의 기사를 보도했다. 사례도 극히 예외적이거니와, 그 원인을 턱없이 부족한 공적 지원이 아닌 탈시설로 돌린 것은 인권 의식과 감수성의 빈곤을 드러낼 뿐이다. 브룩스를 쇼생크로 돌려보내고, 우리도 영원히 마스크를 벗지 말아야 할 게 아니라면.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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