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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치형의 과학 언저리] 로봇 차별금지

등록 2022-05-05 18:05수정 2022-05-06 02:39

우리는 네이버 엔지니어들의 도전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네이버가 사람과 로봇이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 애쓰는 만큼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사람과 사람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걸까. 다르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다는 이유로, 이동하지 못하고 교육받지 못하고 일하지 못하는 것은 로봇보다 사람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
‘네이버 1784’ 누리집 갈무리
‘네이버 1784’ 누리집 갈무리

전치형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주간

4월11일 스마트도시협회는 네이버 제2사옥인 ‘네이버 1784’를 세계 최초 로봇친화형 건축물로 인증했다. 네이버는 이 건물을 “미래 기술을 융합하는 거대한 실험의 시작”이자 “사람과 로봇의 공존을 위한 세계 최초의 실험”이라고 부른다. 새로 짓는 사옥 전체를 로봇이 자유롭게 다니며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처음부터 기획하고 만들어 나갔다는 네이버 엔지니어들은 “로봇이 우리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세상을 준비”한다는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홍보 동영상에 나온 한 엔지니어는 “이걸 만일 우리가 성공적으로 할 수 있다면 ‘정말 뿌듯할 거다’라는 생각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사람과 로봇이 완벽하게 공존하는 건물이란 도대체 어떤 곳일까. 간단히 말해 그것은 사람과 똑같이 생기거나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로봇을 차별하지 않는 공간이다. 네이버 1784 건물이 최우수 등급을 받은 ‘로봇친화형 건축물 인증 지표’는 로봇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지 알려준다. 우선 로봇이 다치지 않고 이동할 수 있도록 출입 접근로가 있어야 하며, 경사가 적당해야 하고, 바닥 마감이 좋아야 한다. 네이버 1784에는 로봇이 이동하는 데 장애가 되는 단차가 없다. 또 높은 건물에서 로봇이 수직 방향으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세계 최초 로봇 전용 엘리베이터라는 로보포트를 설치했다. 사람이 가는 곳은 로봇도 모두 갈 수 있도록 로봇 이동권이 보장돼 있다.

로봇친화형 건물에는 로봇이 직접 접촉하지 않는 부분에도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 로봇이 움직일 때 센서 인식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빛을 조절하는 차광시설이 있어야 한다. 또 다수의 로봇이 사고 없이 동시에 동작하려면 빠른 통신네트워크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네이버 1784의 로봇들은 심지어 뇌에 해당하는 컴퓨터를 몸체에 달지 않고 클라우드로 옮겨 놓아 더 빠르게 학습할 수 있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건물 전체가 로봇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인간 사회로 치면 법과 제도가 촘촘하게 얽혀 자유로운 이동과 학습과 노동을 보장해주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네이버 1784를 만든 엔지니어들은 로봇이 로봇으로서 오롯이 존재하고 일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준 것이다. 로봇이라는 다소 낯선 존재를 자신들의 공간으로 맞아들이기 위해 그들은 로봇의 구조, 특성, 움직임을 깊이 분석했고, 로봇과 함께 일하기 위해 필요한 물리적 환경과 비물리적 시스템을 설계했다. 사람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거나 낯설다는 이유로 미루지 않고 오히려 로봇을 위해 과감하게 공간을 바꾸었으며, 그 속에서 사람과 로봇 사이의 새로운 관계가 탄생하리라 믿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엔지니어로서 원하는 미래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그 대답을 우리가 직접 써보자”라고 나섰다.

우리는 네이버 엔지니어들의 도전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네이버가 사람과 로봇이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 애쓰는 만큼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사람과 사람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걸까. 다르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다는 이유로, 이동하지 못하고 교육받지 못하고 일하지 못하는 것은 로봇보다 사람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 네이버가 “사람과 로봇의 공존을 위한 세계 최초의 실험”을 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사람과 사람의 공존을 위한 사회적 실험을 미처 시작하지 못했다. 몇몇 국회의원이 발의한 평등과 차별금지를 위한 법률안에 쓰여 있듯이, 그 실험은 여러 사회적 영역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유전정보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고용 형태, 사회적 신분 등 어떠한 사유로도 차별을 받지 아니하”는 세상을 지향해야 한다.

네이버 1784를 홍보하는 동영상은 “혁신을 현실로”라는 말로 끝난다. 네이버 엔지니어들은 사람과 로봇이 공존한다는 혁신적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려 최선을 다했다. 꿈꾸고 약속만 한 것이 아니라 결정과 실행까지 밀고 나갔다. 반면 사람과 사람이 차별 없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오래된 약속은 아직도 현실이 되지 못했다. 네이버가 로봇 차별을 금지했듯이 우리는 사람 차별을 금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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