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3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이른바 ‘검수완박’ 관련 법안들을 표결 처리한 뒤 동료 의원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강희철 ┃논설위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란 별칭이 붙은 개정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을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공포한 지 20일이 지났다. 찬반 격돌의 열기가 좀 가셨으니 냉정한 질문을 던져볼 시점이다. 문재인 정부 혹은 더불어민주당은 검수완박에 성공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박’ 근처에도 못 갔다. 검찰에 정통한 사람들은, 되레 민주당이 검찰 내 일부 특수(특별수사) 검사들을 위해 ‘운동장’을 증축하고, ‘새 잔디’까지 깔아준 격이라고 평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검찰공화국 시대를 활짝 열어주는 들러리를 서고 말았다”는 황운하 민주당 의원의 말은 엄살이 아니다. 정권교체라는 상황 변화를 무시하고 허술하게 급조한 각본을 밀어붙인 결과 무수한 ‘파훼법’만 일깨워준 셈이 됐다.
법은 9월부터 검찰에 부패·경제 범죄 수사권만 남기고 공직자 범죄 수사권을 없애기로 했지만,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령 개정이라는 만능 ‘치트키’를 간과했다. 검사의 수사 범위를 정하는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중 ‘부패’ 범죄에 대표적 공직자 범죄인 ‘직권남용’을 추가하면 법의 자물쇠는 무력해진다. “직권남용도 부패 범죄냐”는 의문의 해답은 ‘부패방지권익위법’에 적시돼 있다.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하여 그 지위 또는 권한을 남용하거나 법령을 위반하여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는 ‘부패행위’가 맞다.
검찰은 9월 이후에도 경제 범죄를 계속 수사할 수 있으나, 일정 액수 이상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 금액 제한을 풀어버리면 검찰은 과거 ‘전성시대’처럼 횡령·배임·탈세 등 거의 모든 경제 사건을 수사할 수 있게 되는데, 이 역시 대통령령만 고치면 된다. 액수 불문 고소·고발 접수는 당연하고, 경찰이 훑어서 넘긴 사건도 단순 ‘보완 수사’를 넘어 뇌물·부패 수사로 무한 확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검찰 수사권 대부분을 넘겨받을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설치되면 이런 ‘우회로’는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하지만 이번엔 인사가 문제다. 윤석열 정부에서 중수청이 출범할 경우 검사와 수사직군은 정부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다. 중수청이 어느 부처에 소속되든 구성원 임명권은 대통령이 갖는다.(검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임기가 정해진 청장·차장은 바뀌어도, 신분이 보장되는 검사와 수사직군은 터줏대감으로 남는다. 일종의 ‘알박기’ 효과다. 게다가 기소권을 가진 검찰은 중수청 사건에 대한 보완수사를 할 수 있고,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사건은 수사 확대에 제약도 받지 않는다.
처음 국회의장 중재안에 국민의힘이 흔쾌히 합의하고, 윤 대통령이 애써 침묵한 이유다. “중재안 내용 대부분은 내가 불러준 거다”, “검사들의 업무 수행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권성동 원내대표의 당시 발언에 진실이 담겨 있다. 중재안은 검찰총장 시절 윤 대통령의 ‘소신’과도 상당 부분 일치한다. 그런데도 국힘이 뒤늦게 합의를 파기한 건 검찰 일부와 보수층, 보수언론의 극력 반발을 무마하려는 목적이 크다.
오히려 뒤늦게 ‘중수청 딜레마’에 빠진 쪽은 민주당이다. 서둘러 만들자니 ‘윤의 사람들’로 채워질 테고, 마냥 늦추자니 명분이 궁했던지 은근슬쩍 ‘제3안’으로 후퇴했다. ‘중수청 설립 시한 1년6개월’을 관련 법 부칙에 못박는 대신 강제성이 없는 사법개혁특위 구성 결의안에 넣는 식으로 얼버무린 것이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직후인 3월20일부터 당의 모든 역량을 투입해 장장 45일간 검수완박 ‘전투’를 벌였다. 민생 외면, 입법 독주라는 비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데 5월3일 ‘고지’를 점령하고 돌아서자마자 당 지지율은 큰 폭(41%→31%, 5월13일 갤럽 발표)으로 하락했고, 국민의힘에 14%포인트 차의 역전을 허용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내내 검찰개혁을 제1국정과제로 삼았지만, 그 대상이 된 ‘전직 검찰총장’에게 정권을 내줬다. 그리고 대선 패배 뒤 반성과 쇄신을 제쳐두고 시작한 검찰개혁 연장전에서 또다시 검찰과 윤석열 정부 좋은 일만 해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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