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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와이(Y)노믹스’는 잔인할 것이다 / 정남구

등록 2022-06-14 17:29수정 2022-06-15 02:38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남구 |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을 뜻하는 ‘와이(Y)노믹스’는 어떤 것인가?

5월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해의 단초를 찾아봤다. 세개의 문장에 핵심이 압축돼 있었다.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피었습니다.” “도약과 빠른 성장을 이루지 않고는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도약과 빠른 성장은) 오로지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에 의해서만 이뤄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핵심 키워드는 자유 시장, 빠른 성장, 과학과 기술이다. 전혀 새롭지 않다.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이 바로 그런 철학을 담은 것이었다.

“정부의 규제를 최소화하고 세금을 줄여 경제 주체들이 시장에서 경쟁하고 창의를 발휘하도록 시장에 맡겨, 시장에서 자연스레 저성장과 양극화 등 한국 경제의 문제가 풀리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매일경제용어사전, MB노믹스 항목)

재벌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등 세 감면, 기업주들에게 부담이 되는 규제의 철폐·완화가 와이노믹스의 전면에 부상할 것임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실제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일 경제단체장들과의 첫 간담회에서 법인세, 기업 상속세 감세와 규제 철폐를 확고히 약속했다.

법인세 인하,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시절의 예를 보면, 투자 촉진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기업 감세로 인한 세수 감소는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소득세를 늘려 메꾸게 될 것이다.

공무원 힘자랑에나 쓰이는 불필요하고 과도한 규제, 없애고 완화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고, 경제적 강자와 약자 간 공정한 협상과 거래가 이뤄지게 하기 위한 규제, 환경 보존이나 균형발전 등 사회적 가치를 위한 규제라면 함부로 없애면 안 된다.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 따지면 된다.

정부 출범 이후 한달이 지났다. 조만간 새 정부가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할 텐데, 3월9일 대통령 선거 이후 꾸려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부터 해온 일로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당면 최대 경제 현안은 물가다. 윤석열 대통령은 ‘물가’를 여러차례 강조했다. 14일엔 “공급 사이드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하겠다”고도 했다. 갖은 애를 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공급충격에서 오는 물가 급등은 ‘잡겠다’는 식으로는 풀기 어려운 일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물가가 급등하자 52개 생활필수품을 정해 집중관리를 했지만, ‘엠비물가 품목이 물가를 끌어올렸다’는 놀림만 받았다. 윤석열 정부는 수입 돼지고기의 관세(최고 25%)를 면제하고, 커피 원두 부가가치세(10%)를 내년까지 면제하는 등의 생활·밥상물가 안정책을 5월30일 발표했다. 한두달이면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게 드러날 것이다. 사실 지방선거 이틀 전에 발표한 이날 대책의 핵심은 고가주택 보유자일수록 혜택이 큰 ‘보유세 인하’였고, 취약계층 지원(9천억원)은 포장에 불과했다. 잔인했다.

물가 급등기에 정부 정책은 경제주체들의 고통과 갈등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원자재 가격 상승을 판매 가격에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시장지배력이 큰 기업들은 별 고통이 없다. 요즘 정유사처럼 횡재하는 곳도 있다. 반면, 원자재값은 오르는데 납품단가를 올려받지 못하는 하청업체, 생필품 가격은 오르는데 임금을 올려받지 못하는 노동자 등에게 고통이 집중된다. 고통을 공정하게 나눠 지게 조정하는 것이야말로 물가 관리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꼭 있어야 할 곳에 정부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당장 나서야 할 일은 납품단가 연동제의 도입이다. 유가 상승의 부담을 화물차주가 고스란히 짊어지지 않게 운임이 공정하게 결정될 수 있게 돕는 것,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실질임금 삭감이 이뤄지지 않게 하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탄력세율 한도인 30%까지 이미 내린 유류세의 추가 인하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10% 더 내려봐야 리터당 82원(휘발유)가량인데 티도 안 나고 세수만 준다. 차라리 그 돈으로 실질소득이 하락한 저소득계층을 지원하는 것이 어떤가. 역대 최대인 62조원 규모로 편성한 2차 추경에서 물가·민생 안정 예산은 겨우 2조2천억원이었다.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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