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순례단이 지난 3월22일 오전 대구 수성구 범어역 인근에서 에이아이지(AIG) 어드바이저 보험대리점 관리자 갑질 및 부당행위 규탄 선전전을 마친 뒤 보험설계사들과 함께 행진하고 있다. 대구/백소아 기자
박주희 |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봄바람 순례단이 다시 대구를 찾아왔다. 지난봄 내내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전국의 현장을 찾은 순례단이 이번에는 순례를 기록한 영상과 함께 왔다. 평일 저녁, 50명은 앉을 수 있는 독립영화관 객석이 얼추 찼다.
영상 ‘여기, 우리가 있다’는 순례단이 40일 동안 방문한 현장 95곳 가운데 10곳 이야기를 골라 담았다. 삼척화력발전소, 현대건설기계 사내하청 서진 노동자, 세월호와 스텔라데이지호, 코로나19 의료공백, 소성리 등 현장과 사람들 이야기를 옴니버스 다큐로 보여준다. 이야기는 크게 기후위기, 평등, 노동, 평화로 모인다. 싸우는 상황도 싸우는 이들도 전혀 다른 현장을 담았는데 마치 하나의 이야기처럼 자연스레 엮인다. 순례단을 따라가는 영상은 순례의 기록이자 현장 기록이다.
1시간 남짓 영상을 본 뒤 관객과 대화가 이어졌다. 순례단의 문정현 신부님과 활동가 딸기, 한국장학재단 콜센터 노동자가 이야기 손님으로 함께했다. 문 신부님은 “방방곡곡 아프고 힘든 현장 소식이 들리는데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길을 나섰다”고 했다. 순례단의 딸기는 현장의 환대를 기억하고 연대의 의미를 짚었다. “찾아가는 지역마다 길동무들이 기다리다 맞아줬다. 현장마다 긴 시간 힘든 투쟁을 버틸 수 있는 것도 이렇게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라고 했다. 객석에서 정규직화와 민간위탁 폐지를 요구하던 콜센터 노동자들의 싸움은 어찌 됐냐는 질문이 나왔다. 여전히 민간위탁 상태이며 정규직도 되지 못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순례단이 다녀간 현장 어느 곳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정규직으로 직접고용 되는 일은 없었고, 폭력적인 개발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싸움이 멈춘 곳도 없다. “여전히 비정규직이지만 임금인상과 복지개선을 요구하는 또 다른 싸움을 준비한다”는 콜센터 노동자의 말처럼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영상 곳곳에 녹록지 않은 현장의 막막함과 두려움이 전해진다. 영상을 보는 내내 그 고단함에 숙연해졌다. 그래서 순례단의 발걸음과 응원이 더 반갑고 든든했던 봄날이었다.
순례단이 방문한 곳은 싸우고 있는 전국의 수많은 현장 가운데 일부다, 더 많은 곳에서 더 아픈 이유로 싸우는 이들이 많다. 이 여름, 순례단은 몇이 모이든 상영회가 열리는 곳을 다시 순례 중이다. “봄바람에 이은 가을바람, 겨울바람”을 이야기하는 문 신부님은 “(지금은) 아득하지만 (그날은) 온다”고 했고, 영상 속 어느 활동가는 “지치지 않는다, 지겹게 보자”는 말로 관객들을 다독인다.
상영회에 가면서 은근히 기대를 품었다. 아프고 힘든 현장 이야기지만 분명 가슴 뻐근한 희망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순례단이 힘든 걸음을 옮기며 현장에서 건져 올린 희망에 무임승차하려는 불순한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돌아오는 걸음은 더 무겁다. 길동무조차 못 된 무심한 관객이지만, 영상을 통해 전하고자 한 이야기는 잘 알아들었다. ‘어디선가 힘겹게 싸우는 사람들이 있고, 여기에 마음 보태는 모두는 연결돼 있다.’
상영회를 준비한 대구 단체들이 관객들에게 엽서를 한장씩 건넸다. 엽서에 붙은 작은 봉투 안에 해바라기 씨앗 열알이 들어 있다. “씨앗은 끊임없는 관심 속에서 새로운 씨앗을 품은 해바라기가 되고, 새로운 씨앗을 만들어 갑니다.” 엽서 맨 아래에 해바라기씨 심는 방법이 적혀 있다. 씨앗을 물에 30분 정도 담갔다가 뾰족한 부분이 밑으로 가도록 심고,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두고 물을 충분히 주라고 한다. 찾아보니 해바라기는 4~5월에 심어야 한단다. 파종 시기는 이미 놓쳤다. 그래도 한번 심어보려 한다. 해바라기 씨앗을 나눠준 그 손은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이번 회로 박주희 사무국장의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