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선수가 한여름 밤 시원한 축구를 선물하고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가 소속된 토트넘 구단(클럽)은 최근 6명의 수준급 선수들을 새로 영입하며 팬들의 기대치를 한껏 높였다.
유럽 축구 각 리그의 구단들은 다음달 2022~2023 시즌 개막을 앞두고 선수 거래와 전력 보강에 분주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선수 이적료는 보통 수백억원대이고, 엘링 홀란 같은 대어급은 1천억원이 훌쩍 넘는다. 주급도 수억 이상이 흔하다. 최고급 자동차를 몰고, 호화 저택에 사는 프로 축구 선수는 ‘꿈의 직업’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선수들이 이런 대접을 받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물론 저절로 이뤄진 일도 아니다.
1990년 벨기에 프로 축구 주필러(1부) 리그에서 미드필더로 뛰던 장마르크 보스만(당시 26살)이란 선수가 있었다. 그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소속 클럽(RFC 리에주)이 기존 급료를 4분의 1로 깎는 재계약을 제안하자 이를 거절하고 프랑스 리그 됭케르크 구단으로 이적하려 했다. 그런데 리에주가 거액의 이적료를 요구한데다 외국인 선수 쿼터 제한(팀당 3명)까지 걸리게 되자 됭케르크는 영입 의사를 철회했다. 당시엔 계약이 끝난 선수라도 원 소속 클럽이 동의하지 않으면 이적할 수 없었기에 보스만은 경기 출장 정지 징계까지 당했다.
“클럽에 포로로 잡혔다”(<가디언> 2015년 12월12일치 인터뷰)고 생각한 보스만은 유럽사법재판소에 리에주를 제소했다. 기나긴 법정 공방 끝에 1995년 12월15일 재판소는 보스만의 손을 들어 줬다. 판결 취지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계약 만료와 동시에 구단의 선수 소유권은 소멸되며, 유럽연합(EU) 회원국 국적의 선수는 쿼터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흔히 ‘보스만 룰’로 불리는 이 판결을 축구계가 수용하면서 선수들은 비로소 자유 이적이 가능해졌다. ‘슈퍼 갑’이던 구단과 선수의 지위는 완전히 역전됐다. 선수들 몸값도 천정부지로 올랐다. 축구로 큰 부를 이룬 메시나 호날두, 주급 3억원을 받는다는 손흥민도 모두 보스만에게 빚을 진 셈이다.
그러나 은퇴가 임박한 31살에야 승소 판결문을 받아 든 보스만은 어떤 혜택도 누리지 못한 채 그라운드를 떠났다.
강희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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