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강제폐원 직전 진주의료원 모습.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지부 제공
[서울 말고] 권영란 | 진주 <지역쓰담> 대표
이런, 코로나19에 걸리고 말았다. 흔한 말로 그동안 잘 피해 다녔다 여겼는데, 2년6개월 만에 코로나바이러스와 맞닥뜨렸다. 며칠 내내 목이 아프고 열이 내리지 않는데 코로나 감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지금까지 철저히 예방규칙을 준수했고 주변에서 확진자가 속출할 때도 나는 멀쩡했기에 감염 위험에 둔감해져 있기도 했다. 처음으로
선별진료소 앞에 줄을 섰고 안심진료를 신청했고 피시아르(PCR) 검사를 했다. 다음날 양성이라는 검사결과 문자를 받고도 실감 나지 않았다. 검체 채취일로부터 일주일, 검체 채취 전 4일까지 합쳐 꼬박 11일 격리돼 있었다.
1인가구인 나는 격리 기간 외부의 도움이 필요했다. 약이 더 필요했고 식료품이 필요했다. 그 일주일 동안 지자체 질병보건담당은 내게 문자 두번, 전화 한번으로 지침을 안내했고, 격리해제 이틀 전 해제 준수 문자를 두번 보내왔을 뿐이다. 격리에 따른 별도 조치는 없었다. 격리 기간 나를 돌본 것은 동네 친구들이었다. 마트나 음식 배달서비스 이용을 권할 수도 있었겠지만, 친구들은 돌아가며 현관문 밖에 먹거리를 사두고 약상자를 갖다 놓고 매일 전화로 몸 상태를 물었다.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더니 요즘은 온 마을이 1인가구를 지킨다’는 우스갯소리를 나누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처지가 이렇다 보니 코로나 감염만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받을 수 있는 공공의료와 의료서비스를 생각하게 된다.
현재 경남에서는 진주의료원 폐원 10년 만에 서부경남지역 공공병원이 추진되고 있다. 경남도의료원 진주병원(가칭)이다. 내과·외과·산부인과 등 19개 진료과목에 300병상 규모로, 사업비는 총 2087억원이다. 올 하반기 의료·운영 체계 수립 연구용역에 들어갈 예정으로, 2025년 착공해 2027년 준공할 계획이다. 건립 예정지인 진주시 정촌면 옛 예하초등학교 터는 인근 지역에서 접근하기 쉬워, 진주병원이 운영되면 남해·사천·하동·산청 등 진주 인근 의료사각지역 주민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니 다행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참 원통한 일이다. 버젓이 운영하던 공공병원을 폐업하더니 결국 10년 만에 다시 짓고 있다. 103년 역사의 진주의료원 폐업을 강행한 이는 홍준표 대구시장이다. 2012년 12월19일 보궐선거로 경남지사에 당선되고 이듬해 ‘진주의료원 적자를 왜 경남도가 감당해야 하느냐’며 그 책임을 진주의료원 노조로 떠넘겼고, 진주의료원은 달랑 5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그랬던 그가 제2대구의료원 건립을 두고서도 ‘공공의료원 필요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니, 2013년 진주의료원 폐업을 강행할 때가 떠오른다. 그 뒤 10년 가까이 지났건만 그의 인식은 좀체 진전이 없어 보인다. 공공의료를 두고 여전히 시장과 수익성을 따지는 자본 논리가 먼저라니….
최근 지역 움직임을 살펴보면, 공공의료와 의료·돌봄서비스 인식 수준은 광역단체장이나 정치인들보다 경남 산청·합천지역 주민들이 더 높아 보인다. 올해 4월 법인으로 등록한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야기다. 경남에서는 첫 의료협동조합이다. 조합원인 지역주민이 주인으로 의료진이 협동해 주민들의 건강·생활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영리보다는 지역 의료공공성을 중시한다. 산청군은 고령 인구 40% 안팎인 ‘전국 10대 고령지역’으로, ‘내 주치의’ 같은 의료·돌봄서비스가 꼭 필요한 지역이다. 몇년 후엔 아마 경남산청의료협동조합이 동력이 돼 지역을 지키고 우리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행복한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아직 조합원으로 가입하지 못했지만 들려오는 소식에 절로 귀를 세우게 된다. 인간다운 의료·돌봄이 필요해. 온 마을이 나를 지켜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