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을 가린 니캅 위로 학사모를 쓴 여성 졸업생들이 지난 23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대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 참석하고 있다. 칸다하르/EPA 연합뉴스
[코즈모폴리턴] 조기원 | 국제뉴스팀장
최근 아프가니스탄의 대학에서 여학생이 눈만 빼고 얼굴을 완전히 가린 베일인 니캅을 쓰고 졸업식에 참석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외신을 통해 보도됐다.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지난해 8월15일 수도 카불을 점령해 아프간을 재장악한 지 1년이 지난 아프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차 집권기였던 1996~2001년 여성 취업과 교육을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극단적이고 억압적인 통치로 비난받았던 탈레반은 지난해 아프간 재장악 뒤 한때 변화 의지를 보였다. 카불 점령 이틀 뒤인 지난해 8월17일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슬람 틀 안에서 여성들이 일하고 공부하는 걸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탈레반이 말하는 “이슬람 틀 안에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곧 드러났다. 탈레반은 한달 뒤인 지난해 9월 여성들에 대학교육을 허용하지만, 여학생은 남학생과 교실에서 분리돼야 하며 니캅을 쓰고 온몸을 가리는 통옷인 아바야를 입어야 한다고 발표했다.
니캅을 쓴 대학생들의 졸업 모습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것이다. 탈레반 재집권 이후 아프간 대부분 지역에서 여성 중등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탈레반은 지난 3월21일 한국의 중·고등학생에 해당하는 7학년 이상 여학생 등교를 허용한다고 했으나, 이틀 뒤인 23일 개교일이 되자 “이슬람법 원칙과 아프간 문화”에 따른 교육이 준비되지 않았다며 중단시켰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등교를 했던 여학생은 학교에 가자마자, 탈레반 대원과 교사로부터 집에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울면서 발길을 돌렸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일부 아이들이 탈레반 몰래 운영되는 ‘비밀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중·고등학교 과정 교육을 받아야 할 여성 약 160만명이 배움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7학년이 되는 대체적 연령은 13살, 소녀들이 ‘13살의 벽’에 부닥쳐 좌절하고 있다.
탈레반이 중·고등학교 개교 첫날 갑자기 여학생 등교를 취소한 정확한 이유는 수수께끼다. 탈레반이 재집권 뒤 여학생 중등교육 자체를 반대한다고 표명한 적은 없다. 이 때문에 최고지도자 하이바툴라 아훈자다와 일부 측근들의 갑작스러운 결정 하달 때문이라는 추정, 중앙이 지방 보수파들의 반대를 꺾지 못해서라는 관측 등이 엇갈린다. 탈레반이 방침을 바꿔 내년 봄 개학 때 여학생들에게 중·고등학교 문을 개방해도 교사 수 부족 등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해, 여학생 중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 집권 이후에도 아프간에 남은 하미드 카르자이 전 대통령은 최근 <도이체 벨레>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말랄라라는 이름의 10살 난 딸이 있다며 “그 아이도 (중학생에 해당하는) 7학년이 될 텐데 현재 상황이 계속되면 교육을 이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탈레반에 대해 비판적인 언급을 자제하는 듯하던 카르자이 전 대통령은 교육 이야기가 나오자 “그들(탈레반)은 여자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이에 대한 어떤 타협도 용납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프간 여성 언론인이 아프간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만든 뉴스사이트 <루흐샤나 미디어>에는 마흐 리카라는 이름의 14살 여학생 이야기가 실려 있다. 마흐 리카는 “학교에 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실망해서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후 “꿈과 미래를 위해 노력하자고 자신에게 이야기했다”며 “외국에서 컴퓨터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집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흐 리카와 같은 아프간 소녀들의 희망을 꺾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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