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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영국인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여왕, 식민주의엔 침묵했다

등록 2022-09-13 18:09수정 2022-09-14 02:08

8일 서거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인들에게는 자상한 어머니·할머니 같은 존재였다. 제국의 쇠퇴와 이어지는 혼란 속에서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다. 국정을 책임지는 총리도 여왕에게는 고충을 솔직하게 털어놓곤 했는데, 여왕은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일종의 스펀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때때로 정부 관리들이 보지 못하는 다른 관점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가디언>은 전한다. 서구권 나라들에서도 그는 존경받는 정치지도자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식민지 국가들에는 억압의 상징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2세 재임 시절에만 해도 영국은 몇차례 식민지 시민들의 저항을 무력진압했다. 1952년 왕좌에 오르자마자 케냐에서 ‘마우마우 봉기’가 시작됐다. 당시 식민지 정부는 수만명의 케냐인을 구금하고 고문까지 자행했다. 1955년 지중해 섬나라인 키프로스에서도 저항하는 민간인들을 고문했다. 1972년 북아일랜드에선 영국군이 시위 군중에게 발포해 14명이 숨지는 ‘피의 일요일’ 사건도 발생했다. 여왕이 이런 잔혹한 범죄행위를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식민지 관리들은 당시 관련된 많은 문서들을 파기했다고 미국 하버드대 마야 자사노프 교수(역사학)는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말한다.

영국에선 2010년께부터 과거 식민지 흑역사를 인정하고 수정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이 커졌다. 케냐 고문 피해자들은 2009년 영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2012년 승소했다. 이듬해 영국 정부는 무력진압과 가혹행위를 사과하고 피해자 5000여명에게 1990만파운드(당시 한국 돈 341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했다. 영국이 식민주의 피해자들에게 배상한 첫 사례였다. 2019년엔 키프로스 고문 피해자들에게도 100만파운드를 배상하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제국을 미화하는 기념물을 제거하고 유적지의 안내문을 수정하는 작업에도 나섰다. 그러나 2016년 브렉시트 결정 이후 영국에 인종차별주의 풍조가 되살아난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강력한 소프트파워를 지닌 여왕의 존재는 영국인들에게 마치 대영제국이 존속하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들게 하기도 했다고 한다. 여왕의 서거가 영국이 제국주의 환상에서 깨어나 식민주의 흑역사를 청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박현 논설위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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