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범 대중문화팀장
아침햇발
관객 1천만명을 넘어 곧 한국 영화 역대 흥행 1위로 올라설 게 확실시되는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이 얼마 전 한 인터넷 매체가 주는 상을 받고 소감으로 이런 말을 했다. “이렇게 많이 볼 줄 알았으면 좀더 잘 만들 걸 그랬어요.”
이 말이 케이블 텔레비전에 방영도 됐다. 이준익 감독과 함께 영화사 ‘씨네월드’의 3인방을 이루며 한식구처럼 지내온 정승혜 전 씨네월드 이사(현 영화사 아침 대표)는 그 방송을 보면서 “저 양반 또 일 내네”하는 걱정이 앞서면서도 웃겨서 배꼽을 잡았다고 했다.
참 이준익다운 말이다. ‘존경’이라는 말을 쓸 때, 멋있어 보이는 그 단어의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 ‘그 하찮은 존경’하는 식으로 상반되는 수식어를 붙여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그에게, 감동적인 수상 소감은 목구멍에 걸리고 말 것 같다. 또 영화 만들면서 단 1초라도 이 영화가 1천만명 관객을 모을 거라는 기대나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그로서는 솔직한 소감이기도 할 것이다. 내게는 그 희한한 수상 소감이, 반골 성향이 다분하면서도 자유분방한 그의 기질이 1천만 관객을 모은 뒤에도 변하지 않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서 반갑게 들리기도 했다.
그런데 정승혜 이사의 걱정처럼 그 소감은 위험스럽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성공 지상주의를 조롱하는 말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그 소감이 어딘가 보도됐다면 ‘오만하다’ ‘싸가지 없다’는 투의 댓글이 몇 개는 붙었을 것 같다. 그만큼 성공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렇게 무성의하게 말하냐는 비난이 나올 법하지 않나. 여론은 정치인이든 배우든 성공한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겸손을 요구한다. 거기서 벗어나면 매질한다. 이런 태도는 성공 지상주의의, 같은 동전의 반대면일 수 있다.
성공에 목 매는 사회, 성공하지 않으면 불행을 피할 수 없는 사회에 살다 보면 성공 지상주의가 구성원들의 마음속에 내면화해 이데올로기가 된다. 성공한 사람들은 숭배를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최소한 그들은 자기 성공의 결과 앞에 경건해지거나, 경건한 척해야 한다. 그런데 대다수의 경우 성공이라는 건 남과 경쟁하고 싸워서 이겼다는 말일 터. 그걸 개인적으로 선망하는 차원을 넘어 사회의 여론으로 상찬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매체와 여론은 성공 신화에 목말라 한다.
성공 지상주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겠만 개인을 무한경쟁, 약육강식의 마당으로 내모는 신자유주의와 맞물릴 때 그 위험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패배자와 약자가 보호받지 않는 사회에선 행복을 성공과 동일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동일시는 패배자와 약자를 더 벼랑으로 밀면서 사회의 불행을 확대할 수 있다. 이럴 때 사회의 여론은 이긴 자를 숭배하기보다 패배자와 약자를 보호하고 격려하는 쪽에 더 마음을 써야 하지 않을까.
지금 여러 매체와 인터넷에선 스크린쿼터·농업과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저울의 양쪽에 얹고 득실을 계량하기 바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무한경쟁의 범위를 남한에 국한하지 않고 미국 땅까지 확장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그 싸움에서 질 가능성이 높은, 함께 경쟁하는 게 불가능한 수준에 있는 약자들을 버리고 가려고 한다.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뒤 더 큰 성공 신화들이 쏟아질지 모른다. 그때 성공한 이들에게서 이준익 감독의 수상소감처럼 솔직하고 웃기는 소감을 듣기는 쉽지 않을 것같다.
임범 대중문화팀장 is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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