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하는 것은 도와주기 위해서거나 심심해서 그러는 거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정신감정을 받게 해야 한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이 감독하고 유대인도 프러듀서로 참가한 <파라다이스 나우>(Paradise Now)라는 아랍어 영화가 제78회 아카데미상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20대 초반의 팔레스타인 청년 두 사람이 자살폭탄 공격(언론들은 당연하다는 듯 ‘테러’라고 표기하지만)을 실행하게 되는 과정을 실화처럼 실감있게 묘사해, 할리우드에서도 화제가 된 영화다.
한 유대인 평자는 비슷한 소재를 영화화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뮌헨>에 대해서는 “불유쾌한 미국제 서부극”이라 혹평했으나 <파라다이스 나우>를 두고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 전세계 사람들을 고뇌에 빠뜨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며 극찬했다. “… 그렇게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들은 누군가? … 팔레스타인 사람들 대다수는 왜 이런 사람들을 자폭공격으로 내모는 원흉(하마스)을 자신들의 대표로 뽑았을까?” 베를린 영화제에서 최우수 영화상을 받기도 한 이 영화가 “폭탄테러를 정당화하고 테러범을 피해자처럼 묘사하고 있다”며 상을 주지 말자고 한 탄원서엔 3만6천여명이 서명했다. 그런 미국 분위기 탓인지 상은 못 탔다.
자폭으로 내몰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절망적인 몸짓을 손가락질하며 혹시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나 ‘근본주의’가 망치고 있다고 도통한 척하는 이들이 있을까. 있다면 아마 ‘사실’도 ‘민족’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거나 관심이 없고 불의에 분노할 줄도 모르는 역사의 방관자나 비겁자일 가능성이 높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읽으며 여러 생각을 했다. 팔레스타인과 우리 처지야 물론 다르지만 상통하는 역사적 진실을 볼 수 없다면 상상력과 철학의 빈곤 탓이리라.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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