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 경제부 선임기자
아침햇발
지난 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재정경제부 기자실에서 한 차례 소동이 빚어졌다. 재경부가 이날 오전 열린 간부회의 내용을 브리핑하면서 한덕수 부총리가 마치 ‘강남 재건축 완화’를 내비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자 기자실이 발칵 뒤집힌 것이다. 만약 강남 재건축 완화를 검토한다면 정부 재건축 정책의 일대 전환이며, 강남 집값에 엄청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재경부는 서둘러 해명자료를 내고 이런 해석을 강하게 부인했다. 한 부총리는 간부회의에서 “강남 수요가 실질 수요에 의한 것인지 투기수요에 의한 것인지를 세밀하게 분석하여 적절히 대처하라”고 지시했을 뿐, 재건축 완화와 관련한 내용은 일체 언급한 사실이 없었다는 것이다. 소동은 일단 ‘브리핑 과정에서의 혼선’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촌극에서 보듯, ‘강남 재건축 완화’는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다. 누구도 손을 대길 꺼린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판도라 상자’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강남 재건축과 관련된 기존의 정부 정책은 소형평수 의무제, 개발이익 환수제, 용적률 제한 등 규제 일변도다. 일단 꼭꼭 묶어놓고 ‘제발 내 임기에는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는 형국이다.
물론 이렇게 규제를 강화하면 일시적으로 재건축 시장이 얼어붙긴 한다. 지난달 재건축 용적률을 210%로 제한하자 재건축의 대명사격인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매매거래가 뚝 끊기고, 값은 조금 낮춘 매물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묶어둘 수는 없는 일이다. 재건축을 이렇게 규제한다고 강남 집값이 장기적으로 안정되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8·31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한 부총리는 “이제 부동산 투기는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그 뒤에도 강남 아파트 값은 꾸준한 오름세를 타고 있다. 또, 재건축을 이렇게 막다 보면 기존 주택의 희소성이 높아져 신규 공급 주택 값이 상대적으로 더욱 뛰게 된다. 이른바 ‘풍선효과’로 이미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입주된 강남의 도곡렉슬의 경우, 평당 4천만원이 넘어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이런 정책이 폭발력을 점점 키우고 있다는 데 있다. 공급 제한으로 가격흐름이 왜곡되면 언젠가는 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정책 당국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재경부나 건교부 고위관계자들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강남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구체적으로 소형 의무비율 완화 등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 부담은 지려고 하지 않는다. ‘재건축 완화’ 등을 통한 공급 확대 방침을 밝히는 순간, 강남 집값이 꿈틀대고 온갖 비난이 쏟아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도 이제는 공급 확대로 말미암은 부담을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 ‘내 임기 중의 집값 안정’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집값을 안정시킬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같은 규제일변도의 정책을 고수하면 결국에는 나중에 강남 재건축 시장이 경착륙하면서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한 부총리의 간부회의 발언이 ‘재건축 실질공급 확대’ 등으로 해석되자 이를 황급히 거둬들였지만, 그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부터라도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공급 확대가 개발이익 확대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돈 안 되는 재건축은 아무도 안하겠지만 재건축으로 말미암은 폭리를 용인해서도 안 된다. 그 사이에서 적정선을 찾는 게 정책당국의 과제다.
정석구 선임기자 twin86@hani.co.kr
정석구 선임기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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