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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대추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등록 2006-03-09 18:23

이승렬 영남대 교수·영어영문학
이승렬 영남대 교수·영어영문학
기고
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에 사는 농민들이 미군기지 확장 계획에 따라 자신들의 생존 근거인 농사터를 나라에 강제로 수용당했다. 지난 6일에는 이에 반대하는 주민과 경찰이 동원한 용역회사 직원들 사이에 충돌도 있었다.

한국군의 작전 지휘권을 쥐고 있는 미국 정부의 묵인 아래 광주 시민들이 군인들에게 무참히 학살된 이래, 우리들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의 정점에 미국 군사·외교 정책과 미국 ‘국익’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국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이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증하고 있고, 농촌은 피폐화를 넘어 소멸 직전 단계에 처했으며, 생태적 토대는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정직하고 소박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려는 민초들의 생활 터전을 이처럼 뿌리째 흔드는 세력의 원천이 흔히들 초국적 자본이라고 잘못 부르는 미국 자본의 요구라는 것도 알려진 사실이다. 자본은 쾌락과 안락을 바라는 대중들의 욕구를 부추김으로써 그 영역과 몸집을 불려나가지만, 자본의 뒤를 봐주는 좀더 큰 힘은 따로 있다. 그것은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이다. 자본의 장악력은 자본가의 주먹의 크기에 비례한다.

우리가 한반도에서 미군의 존재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물며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미명 아래,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전역에서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추진되는 미군 기지의 확장이라면, 그 목적을 위해 수백만 평의 우리 땅을 새로 내놔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이렇게 조용히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대추리 황새울 들녘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전역에 대한 미군의 영향력 강화는 곧바로 우리들의 삶과 문화가 미국의 자본에 더욱 예속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제가 철저히 미국에 의존하고 있으니, 미국과의 외교적 마찰은 곧바로 경제 운영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소리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지금과 같은 예속경제 체제에서 미국 정부의 말을 고분고분 들어주었을 때 이익을 보는 세력은 누구인가? 반도체, 휴대전화, 자동차를 미국 시장에 팔 수 있는 대자본가 그룹 이외에 이득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나마도 확실치 않다는 예상이 나오는 형국이다.

황새울 들녘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이미 1952년 미군기지 확장으로 말미암아 나라에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지금의 땅으로 쫓겨왔다고 한다. 사전 통보도 없이 불도저를 동원해 마을을 송두리째 밀어버려 설 쇨 준비를 하다 말고 쫓겨났다는 주민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다. 그 실질 내용이 불확실한 ‘국익’을 위해서 농민 백수십 가구가 다시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다. 지금 이대로만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것말고 아무런 요구사항도 없고, 아무 죄 지은 것 없는 이들을 이렇게 다시 쫓아내도 되는 것인가? 이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가 지금 문명국에 살고 있긴 한 것인가?

마르크스는 비극의 역사가 후대에 희극적으로 반복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른바 386 정권실세들의 왕년의 민주화 투쟁이 바로 비극적 광주항쟁의 배경으로 지목된 미국의 존재에 맞선 저항에서부터 시작되었다면, 이들이 집권한 지금 보여주는 굴종이야말로 얼마나 희극적인 모습인가? 나라가 민족의 자존과 민중의 생존권을 외세에 팔아넘기려 한다면, 시민들이 일어서는 수밖에 없다. 사파티스타의 말처럼 ‘이제 그만!’이라고 말해야 한다.

이승렬/영남대 교수·영어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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