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오페라 ‘카르멘’(1875~)
‘아바네라’(하바네라)와 ‘투우사의 노래’처럼 유명한 노래가 연달아 나오는 오페라 <카르멘>. 내용도 흥미진진하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부랑자며 밀수꾼이며 탈주범 등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치정 살인극을 벌이는 범죄 누아르.
주인공 카르멘은 자기감정에 충실한 당당한 여성이다. “사랑은 반항하는 새, 길들일 수 없네.” 카르멘의 노래 ‘아바네라’의 가사다. “잡았다 싶으면 사랑은 달아나고, 당신이 피하면 당신을 붙드네.” 거리낌 없이 살던 카르멘은 옛 애인 돈 호세의 데이트 폭력에 살해당한다.
지금은 가장 유명한 오페라가 되었지만, 초연은 실패했다. 1875년 3월3일, 파리의 오페라코미크 극장에서 첫 공연이 열렸다. 작곡가 조르주 비제는 이 작품에 기대가 컸으나, 쏟아지는 혹평에 마음도 몸도 상하고 만다. “색정적인 발작”이며 “자극적인 외설”이며, ‘선정적이고 부도덕하다’는 중산층의 비판이 퍽 컸다. 심지어 음악이 별로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지금 보면 당황스럽지만 말이다.
초연은 왜 실패했을까? ‘한국의 카르멘’이라 불리는 백재은 메조소프라노에게 물었다. 비제의 음악이 그때 프랑스 사람들이 듣기에 새로웠고, 생소한 내용 탓이 컸다고 한다. 한동안 오페라는 신화 속 영웅과 귀족이 등장하거나 청순가련한 인물이 순정을 뽐내던 무대였다. 게다가 그때 오페라코미크 극장은 부유층의 사교 장소였다. “대여섯개 특별석은 남녀가 선을 보기 위해 예약되는 자리”라 했다. “극장의 주된 수입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못된 오페라 <카르멘>”을 사람들이 반기지 않았다고 백재은은 지적한다.
공연 실패에 낙심한 비제는 석달 뒤 세상을 떴다. 서른여섯, 이른 나이였다.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카르멘>이 재앙과 같은 실패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비제가 죽은 뒤 오스트리아에서, 벨기에와 영국, 미국, 독일에서, <카르멘> 공연은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1883년 <카르멘>은 파리의 오페라코미크 극장에 돌아온다. ‘투우사의 노래’를 부르며 당당히 등장하는 투우사 에스카미요처럼. 오늘날 비제는 <카르멘>의 작곡가로 기억된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