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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한민의 탈인간] 물 들어올 때 노를 놓고

등록 2023-03-12 19:16수정 2023-03-13 02:35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김한민 | 작가·시셰퍼드 활동가

월요일 아침부터 거대담론을 꺼내자면, 그리고 카뮈가 <시지프 신화>에서 “유일하게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철학적 문제는 자살뿐”이라고 한 말을 흉내 내자면, 현 인류가 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진보와 성장을 분리(디커플링)할 것인가.”

여기서 성장이란 국내총생산(GDP)으로 대표되는 양적 경제성장을 말한다. 인류는 이 성장이란 절대 명제를 좇은 현대사를 통해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를 이뤘고, 한국도 그 성공 사례 중 하나로 꼽히게 됐다. 그런데 로마클럽의 1972년 보고서 <성장의 한계> 이후, 바로 그 성장이 우리의 생명유지시스템(지구)을 위협하는 원인이라는, 그래서 성장제일주의를 고집하는 한 기후·생태 위기를 피할 수 없다는 반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여기까진 하려는 얘기의 배경이다.

언젠가부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한창 주목을 받고, 일감이 들어오고, 기회가 주어질 때, 이를 놓치지 말고 최대로 활용해 이익을 극대화하라는 뜻으로, 경제활동과 자주 연관돼 쓰는 표현이다. 그런데 기회를 붙잡으라는 이 무해한(?) 관용구가 대화 상대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찌푸리는 미간을 펴기 위해 애쓰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이 앞서 말한 “진보(즉, 더 나은 삶의 추구)는 곧 경제성장”이란 공식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물”이란 무엇인가? 다름 아닌 자본이다. 자본은 절대로 아무 의도나 방향성 없이 가치 중립적으로 투입되지 않는다. 그것은 반드시 사람을 특정 방향으로 인도하고 강화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란 말은, 물 반대 방향이 아닌 순방향으로 더 빠르고 힘차게 앞서가라는 명령이다. 그래야 더 많이 벌고, 더 몸집을 불리고, 그러면 더 많은 물이 들어오고, 그리고…?

누구보다 기회를 기민하게 포착해 노를 저어 부를 획득한 지인이 여럿 있다. 그들은 예외 없이 대가를 치렀다. “그 친구 변했더라”는 수군거림 따위야 무시한다 해도, 그들 주위엔 그 성공에 기생하려는 이들만 몰려들었고, 진짜 친구는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한번 물 맛을 본 이상 다른 물에서 놀 수밖에 없어서 그런지, 그들을 아끼던 사람들이 보기엔 몰라보게 변해 갔다. 이런 변화는, 물론 눈부신 성공 앞에 사소해 보일 수 있다. 확실한 것은, 물이 들어오면 (그래서 노를 열심히 젓다 보면) 그 물에 물든다는 것이다.

내 인생에도 물이 들어온 적이 있던가. 없었던 것 같다. 만약 들어온 그것이 물이었다면, 본능적 거부감에 반대 방향으로 노 저었다. 덕분에 주머니는 더 가벼워졌고 세속적 성공으로부터도 더 멀어졌으니 어쩌면 후회하는 게 ‘정상’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물을 피해 이마를 훔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과정에서 얻은 것도 있다. 일종의 저항의 기술이랄까. 그것은 “노(No)라고 말하는 법” 같은 항간에 유행하는 자기보호법보다는, 내가 자본과 맺는 관계를 조금이라도 주체적으로 설정해 보려는 몸부림에 가깝다.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부자들, 무수한 추종자를 거느린 인플루언서들을 스승처럼 모시고 경청하는 사회지만, 내가 그들에게 배우는 건 경제적·양적 성장과 지혜의 성숙이 절대 양립하지 않는다는 사실뿐이다. 그들은 내게 멘토나 역할모델이 아니라, 실패만큼이나 성공도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겨주는 반면교사들이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다면 그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물 들어오면 노를 잠시 놓으라. 그리고 물길을 읽으라. 이 물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열심히 따라가면 나는 무엇에 기여하게 되는가? 다시 돌아오지 못해도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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