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갑/산업자원부 차관
기고
자연 생태계의 정교하고 복잡한 먹이사슬은 인간이 지금껏 만든 어떤 것보다도 완벽한 시스템으로 평가되고 있다. 생태계는 동물의 배설물이 미생물의 먹이가 되는 것처럼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완벽한 ‘반응기’(케미컬 리액터)인 셈이다.
이러한 자연계의 먹이사슬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이 생태산업단지(EIP; 에코인더스트리얼 파크)다. 산업단지내 입주 기업간 연계를 통해 기업의 부산물과 폐기물을 다른 기업의 원료로 재자원화함으로써 ‘오염물 배출이 없는’ 미래형 산업단지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최근 환경을 열쇳말로 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로 대두함에 따라 각국에서는 이를 이행하고자 각종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생태산업단지가 그 실천전략의 하나로 꼽힌다.
1964년 최초로 수출공업단지가 조성된 이래 현재 우리나라 산업단지 수는 총 560여곳에 이른다. 지난해 4만1000여 입주업체들은 국민 총생산의 53%, 총수출액의 66%를 생산하는 등 ‘경제발전의 역군’이라는 화려한 조명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 이면에 ‘환경오염의 온상’이라는 지적 또한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산업단지내 기업들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경제와 환경의 상생을 고민하고 지역사회와의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이미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이른바 굴뚝기업 위주의 산업단지가 지속 가능한 생태단지로 성공적으로 변화한 사례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덴마크의 작은 도시인 칼룬보르의 경우 화력발전소의 폐열을 인근 공장의 스팀이나 주민 난방열 공급, 송어 양식 등에 활용하고 있고, 발전소·제약회사·정유사 등 서로 다른 업종의 기업 다섯 곳이 함께 자원 순환망에 참여하여 연간 천만달러에 이르는 비용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기업이나 정부가 중심이 되어 생태산업단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이제 이러한 생태산업단지 사업은 중국, 타이 등 인근 아시아 개발도상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 정부도 기존의 국가산업단지의 녹색화를 위한 생태산업단지 조성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지난해 말 포항·여수와 울산 미포·온산 산업단지 등 세 곳을 시범 생태산업단지로 선정한 데 이어 올해 초 반월·시화와 청주산업단지도 시범단지로 선정했다. 시범사업에서는 단지별 특성을 반영해 환경오염을 낮추고 부산물을 재활용하는 쪽으로 기업간 협력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생태산업단지 구축사업은 기업, 지역 주민, 자치단체에 두루 이로움을 주는 ‘상생의 전략’이다. 기업으로서는 원료 비용 및 폐기물 처리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친환경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 아울러 지역주민과 해당 지자체는 산업단지와 인근 지역이 친환경적으로 변화됨에 따라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생태산업단지 구축에는 많은 시간과 예산이 든다. ‘오염물 무배출’의 생태산업단지를 구축하는 것이 이상적이며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기업과 지역사회 그리고 정부가 함께 손잡고 노력한다면 우리의 산업단지는 국가경제의 동맥으로서뿐만 아니라 환경과 지역사회에 친화적인 생태산업단지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과거 ‘고도성장의 희망’이었던 산업단지가 ‘지속 가능한 성장동력’으로 새롭게 변신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김종갑/산업자원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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