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희/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기고
어제는 1975년 동아일보사에서 130여명의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등 언론인들이 술취한 폭도들에 떠밀려 새벽거리로 쫒겨난 지 31년째 되는 날이었다. 74년에 나온 ‘10·24 자유언론 실천선언’에 따라 언론자유 운동을 벌이던 이들 언론인을 쫓아내기 위해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은 <동아일보>에 광고 탄압을 가했고, 이에 굴복해 독재와 야합한 동아일보 사주 쪽은 이들을 강제로 축출했다.
유신독재와 5공 정권 아래서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로 더 잘 알려진 이들 해직 언론인은 무더기 해직, 미행과 감시, 취업 방해, 구속과 감옥살이, 가족들의 고통 등 담금질을 당했으며, 12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른바 민주정부라고 하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등 세 정부가 들어섰지만, 75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벌어진 160여명의 언론인 무더기 축출이나 동아일보 광고 탄압은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다. 또 동아와 조선의 사주들이 사과나 원상 회복의 의사를 밝힌 적도 없다.
당시 30살이던 동아 해직 언론인 가운데 막내 기수가 올해 환갑을 맞았다. 동아와 조선의 사주들은 이들 해직 언론인이 늙어서 오래지 않아 모두 저세상으로 떠나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 날의 일들을 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마치 일장기 말소 사건의 주역이 현진건과 이상용 등 언론인이 아니고 동아 사주인 것처럼 날조한 게 통하듯 말이다. 친일 행적을 날조하듯이 독재와의 야합-부역도 없었던 일로 조작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눈을 부릅뜬 역사가들이 건재하는 한,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어제도 ‘동아 광고 탄압 및 언론인 무더기 축출’ 진상 규명을 위한 기자회견과 문화제가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마당에서 열렸다. 행사에서 언론노련, 한국기자협회, 피디연합회 등 언론 세 단체가 현역 언론인과 언론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동아 사태의 진상 규명과 사주의 사죄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동아투위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진상 규명위원회’에 진상 규명을 신청할 예정이다.
동아 사주는 왜 ‘있었던 진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진실’을 외면하려 할까. 진실을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새출발을 하는 것이 새로운 미래와의 약속이 될 텐데 말이다. 그래야 다시 신뢰를 세울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자유언론에 앞장선 기자들을 내쫒고 나서 자신들이 오히려 독재에 대항해 자유언론 운동에 앞장섰다고 역사 왜곡까지 일삼는 것을 보면 개과천선의 용기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날 문화제 행사에서는 동아 사태 이후 대학가에서 공연돼 광고 탄압 진상과 동아 사주의 유신독재 권력과의 야합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진동아굿’이 공연됐다. 세상을 뜬 12명의 해직 언론인을 진혼하기 위한 살풀이춤도 있었다. 안종필 2대 위원장을 비롯해 먼저 가신 동아투위 위원들의 명복을 빈다.
문영희/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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