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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교차성’ 분석을 거부하는 유대인 지도자들

등록 2023-06-11 18:50수정 2023-06-12 02:37

[세계의 창] 슬라보이 지제크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지난달 14일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유럽유대인협회 연례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유럽 유대인 지도자들은 반유대주의를 다른 혐오 및 차별과는 별도로 다뤄야 한다고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한편, 유대인 공동체들을 향해 ‘교차성’(intersectionality) 개념을 거부하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많은 국가가 반유대주의를 용인하고 있고, 유엔이 반유대주의를 보호하고 있으며, 혐오의 대상이 되는 다른 그룹마저도 반유대주의를 인종주의의 한 형태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하며 반유대주의를 다른 차별과 별도로 고유하게 다룰 것을 요구했다.

그들이 교차성을 문제 삼는 이유는 뭘까? 교차성은 사회이론과 실제 분석에서 유용한 개념이다. 교차성 개념을 통해 개인을 분석하면, 우리는 그들이 경험하는 억압이나 특권이 다중적인 교차적 차원에서 발생함을 알 수 있다. 위키백과 영문판에서 가져온 교차성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교차성은 한 개인의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정체성이 결합했을 때 어떻게 다양한 차별과 특권의 양상이 만들어지는지 이해하기 위한 분석틀이다. 교차성은 특혜와 불평등의 다중적 요소를 식별하는데, 이런 요소로는 젠더, 계층, 성, 인종, 민족, 계급, 종교, 교육수준, 재산, 장애, 체중, 연령, 외모 등이 있다. 이 사회적 정체성들은 서로 교차하고 중첩하면서 개인에게 특권을 부여할 수도 있고 억압을 부여할 수도 있다.”

교차성 분석은 이 불평등 요소들을 기계적으로 더하지 않는다. ‘유대인’에 대한 반유대주의적 관념에는 종교, 민족, 성, 교육수준, 재산, 외모의 특징이 결합해 있다. 즉, 유대인으로 낙인찍힌다는 것은 ‘잘 씻지 않는다’, ‘종교적 규칙에 독단적으로 매달린다’, ‘투기에 능하다’와 같은 일련의 관념들에 귀속됨을 의미한다.

여기서 반유대주의의 고유성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문제가 발생한다. 저소득층 흑인 여성 동성애자가 네 겹의 억압을 경험한다는 사실이 명백한 것과 달리, 오늘날 부유한 서구 국가의 유대인이 경험하는 억압은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 그들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특권적인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유럽유대인협회는 반유대주의를 교차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렇게 할 경우 추상적인 인종주의적 혐오가 다양한 억압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으로 대체되면서 반유대주의가 예외적인 위치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유럽유대인협회의 주장대로 반유대주의에는 분명히 예외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반유대주의의 예외적인 지위를 이용해 이중 잣대를 옹호하거나 유대인이 평균적으로 누리는 특권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모두 금지하는 것은 문제다. 2020년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실린 반유대주의에 관한 대담 제목은 “누가 반유대주의자인지를 판단하는 사람은 유대인이어야지 잠재적 반유대주의자여서는 안 된다”였다. 좋다. 그런데 그렇다면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맞지 않나?

아이러니하게도 ‘억압’과 ‘특권’을 함께 교차적으로 분석할 때 오히려 반유대주의를 이해하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파시즘은 ‘유대인’을 부패, 무질서, 착취를 가지고 오는 외부 침입자로 몰았고, ‘억압받는 이들’과 ‘특권을 누리는 이들’ 사이 계급 투쟁의 원인을 유대인으로 돌림으로써 사람들이 자신들이 받는 억압이 실은 그들 사회질서에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없도록 했다.

유럽유대인협회의 주장은 사회적 투쟁의 원인이 그 사회에 내재해 있다는 통찰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들의 주장이 그들 자신의 교차적 틀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부 유대인의 특권적 지위를 분석하기만 해도 반유대주의로 비난하고, 나아가 ‘유대인’이 ‘부유한 자본가’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까지도 반유대주의로 규정한다. 유럽유대인협회는 자신들이 스스로 새로운 반유대주의의 토대를 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번역 김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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