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고용 계약법’(CPE)이 촉발한 프랑스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1968년 5월 혁명’(68 운동)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이번 시위와 68 운동은 성격이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바로 그런 즉각적인 대비야말로 지금의 프랑스와 유럽이 여전히 68 운동의 자장 속에 놓여 있으며, 그것이 언제든 현재화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드골 대통령의 퇴진을 불렀던 68 운동은 “정치적으로는 단명한 사건이었으나, 이 운동의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의 의식과 사고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침으로써 유럽문화 전반의 지형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역사의 분수령”이자 “억압적인 기성질서에 저항한 분노의 절규이면서 새로운 삶을 향한 희망의 표현”이었다.
58년 드골 집권 이후 68 운동 전까지 고도성장의 호황을 구가했던 프랑스와 유럽 경제는 그 무렵부터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침체를 맞는다. “경공업 분야는 개도국의 추격을 받아 경쟁이 불가능했으며, 산업혁명 이후부터 유럽을 이끌었던 석탄·철강 산업도 몰락했다. 직물·광업·제철·조선 부문의 일자리가 현격하게 줄어든 67년부터 실업이 고개를 내밀었고, 지역간 불균형이나 여성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저임금도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특히 프랑스 정부는 점차 심각해지는 청년실업에 대한 대책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68·세계를 바꾼 문화혁명>)
그때와 지금 상황이 닮지 않았는가. 게다가 당시의 베트남전과 반전시위, 지금의 이라크전과 반전시위, 당시의 ‘반권위주의·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물결과 지금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의 연장선에 있는 최초고용 계약법에 대한 거부시위도 아귀가 맞지 않은가. 68 때의 구호 하나. “엿먹어라! 사람들을 출신과 숙련기술에 따라 나누고 자신이 만들어낸 비참함, 가난, 불평등, 불의를 애써 못본 척하는 이 꿈쩍도 하지 않는 사회여.”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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