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세상읽기
비정규 노동은 우리 시대가 당면한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이 엉겨 붙은 처참한 환부다. 빈곤과 양극화의 뿌리이며, 온갖 유형의 차별이 부끄러움 없이 얼굴을 내미는 곳이다. 정의와 인권은 여기서 아주 아무렇지도 않게 비웃음을 당한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온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 하는 ‘악’이라고 보는 사람뿐 아니라, 이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인간적인 모양의 사회를 유지할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문제를 아프게 느낀다.
우리가 가고 싶어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를 줄여나가는 것과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다. 문제는, 기업은 기업대로 인력을 필요한 만큼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유연하게 조정하고 가능한 한 고용비용을 적게 들여야 경쟁에서 살아남는 원리가 관철되는 현실에 우리가 살고 있고, 그 안에서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데 있다.
얼마 전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비정규직 관련법은 정부가 해답이라고 내놓은 첫 번째 작품이다. 최대 쟁점은 우리가 흔히 계약직이라고 불러온 기간제 노동을 사용할 수 있는 사유를 법으로 제한할 것이냐의 문제였다. 기간제 노동의 사용기간을 3년으로 하고, 3년을 초과한 경우 정규직으로 고용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현재의 법안으로는 끊임없는 순환고용으로 비정규직을 무한정 쓰는 행태를 고착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노동계의 우려는 근거가 있다.
하지만 ‘사유제한’을 관철하기 위해서 마냥 더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는 쪽의 주장에도 귀기울일 만한 부분이 있다. 노사정위원회에 ‘비정규직 대책특위’를 구성한 때부터 따지면 벌써 5년이 흘렀다. 이 기간 동안에도 기간제 노동자는 거의 200만 명이 늘어났고 전체 임금 근로자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에서 24%로 10%포인트 증가하였다. 지금 이 시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60% 정도를 받으면서 사회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한 채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 아니, 다 그만두고 정직하게 말하자. 더 버틴다고 해도 ‘사유제한’을 관철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우선 법은 여기서 한 단계 매듭을 짓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음 단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개정법에는 우리의 또다른 한 가지 목표인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도모할 방편들이 담겨 있다. 차별금지 조항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이론적으로만 보자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금지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근로조건 격차를 해소하는 것만 가지고도 비정규직의 오남용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기업의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비정규직을 쓰는 이유로 인건비 절감을 든 경우가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차별적인 임금격차를 없앤다면 인건비 절감을 위한 비정규직 사용의 매력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처우를 개선하면 비정규직의 수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새 법안이 차별금지 조항을 명문화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신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고자 차별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진할 수 있겠는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는 남는다. 제대로 하자면, 이 법이 통과되자마자 고용주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시켜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업장에서는 줄줄이 차별소송이 터져나와야 한다. 이런 일은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좀 엉성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법을 가지고라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들이 산적해 있다.
장지연/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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