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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탈세의 대가/김병수

등록 2006-03-22 22:05

유레카
1990년에 국내 개봉된 <언터처블>은 갱을 다룬 미국 영화 중 수작으로 꼽힌다. 시대 배경은 금주법이 시행되던 1930년대 초,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다. 그는 밀주와 도박 등 불법사업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수많은 폭력·살인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했지만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시카고 경찰 간부들은 돈과 암살 위협에 매수된 터였다.

하지만 엘리엇 네스(케빈 코스트너)는 굴하지 않는다. 강직한 경찰 맬런(숀 코너리)과 회계사 월리스(찰리 마틴 스미스) 등으로 특별수사팀을 꾸려 알 카포네 사냥에 나선다. 월리스와 맬런이 잇따라 마피아 총에 쓰러지는 아픔을 겪지만 네스는 끝내 알 카포네를 법정에 세운다.

그런데 네스와 월리스의 소속 기관과 알 카포네의 혐의가 특이하다. 두 사람은 경찰이 아닌 재무부 요원이다. 알 카포네를 법정에 세운 혐의는 탈세였다. 현실 세계에서도 알 카포네는 1932년에 탈세로 11년형을 선고받고, 7년을 복역했다. 출감 후엔 마이애미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8년 뒤 숨졌다.

이 영화가 생각나는 건 탈세범에게 관대한 한국의 법 현실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사법처리되는 건 드물고, 그나마 조세범처벌법이 정한 형량은 3년 이하다.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은 포탈 세액이 연간 5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할 수 있게 해두고는 있지만, 법과 현실은 따로 움직인다. 간혹 특가법으로 구속된 탈세범이 있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려 나온다. 알 카포네가 탈세 혐의만으로 한국 법정에 섰다면, 전례로 보아 그 역시 적당히 실형을 살다 나와 다시 활개쳤을 가능성이 높다.

국세청은 최근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사기 등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포탈한 게 확인되면 조세 범칙 조사를 해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칼을 뽑겠다고 엄포는 놨지만, 칼집 속의 칼은 너무 무디다.

김병수 논설위원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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