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조홍섭칼럼
광우병, 유전자 조작 농작물, 방사성 폐기물 처분 등 잇따른 사회적 논란의 해법을 찾느라 골몰하던 유럽 나라들은 최근 이른바 ‘숙의 민주주의’를 정책결정에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숙의’란 ‘깊이 생각하여 충분히 의논함’을 뜻한다. 현안마다 내용이 복잡해 쉽사리 옳고 그름을 따지기 힘든데다, 정부와 과학자는 대중의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나온 해결책이다. 합의회의, 시민배심원, 공론조사 등 참여적 의사결정이 그 방법들이다. 단순한 찬·반 양론을 벗어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감춰진 갈등을 드러내고 침묵했던 목소리가 터져 나오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해 당사자들끼리 서로 무엇이 다른지, 무엇은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깊이 토론해 합의의 단서를 찾는다.
‘소통’이 시민사회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0일 출범한 시민사회포럼 ‘소통과 대안’은 창립 취지문에서 최근 증폭되고 있는 사회적 갈등의 근본원인을 이분법에서 찾았다. 복잡한 문제인데도 인내심과 긴 소통과정을 통한 합의모색 과정을 생략한 채 네 편과 내 편의 대립으로 치달았다는 문제의식이다.
이런 이분법을 먼저 강요한 것은 정부였다. 새만금 논란은 단적인 사례다. 지난 16일 새만금 사업을 계속하도록 한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자마자 농림부는 새만금의 용도와 관련해 “지역발전과 국익을 감안한 일부 타용도 개발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재판에 악영향을 끼칠까 우려해 “농지로만 쓰겠다”던 태도가 하루 아침에 바뀐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민·관 공동조사단, 토론회, 원로자문회의 등 수많은 의견수렴 절차를 동원했지만, 한 번도 상대가 왜 다른 의견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그들에게 왜 중요한지를 진지하게 검토한 적은 없었다. 대화는 요식절차에 불과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상식이나 “시화호, 영산호, 화성호의 실패로 족하다”는 경험지식은 생경한 과학자들의 궤변 앞에 묵살됐다. 세계적으로 드문 갯벌을 없애면서 ‘친환경 개발’이라고 우겨 진실성을 의심케 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소통단절에는 시민단체도 기여했다. 개발세력과 맞서 싸우는 데 급급한 나머지 공익을 대표해 다양한 의견을 드러내고 합의를 형성하는 심판의 자리를 걷어차고 스스로 좁은 이해당사자가 돼 버렸다. 천성산과 새만금 논란에서는 강제력이 담보되는 소송방식의 운동으로 치달았다. 방조제가 막히거나 터널이 뚫리는 것을 막는 일이 절박하다고 해서 운동이 곧 소송으로 바뀌면 곤란하다. 판결 이후 시민단체들이 소송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판결 내용의 잘잘못을 떠나 애초에 소송이 투쟁수단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조정과 협상을 파탄으로 이끈 정부와 정치권의 무능력이 근본원인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불신과 적대감을 키우지 않고 신뢰 회복과 소통의 끈을 이어가려는 노력은 소송과정의 일희일비에 가려 미미했다. 부안사태의 유일한 성과인 주민투표제가 방폐장 터 선정과정에서 부메랑이 돼 시민사회에 타격을 준 것도, 부정선거 의혹 등을 떠나 밀어붙이기식 운동의 한계로 보인다.
지난해 정부는 ‘공공기관의 갈등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정무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 법은 갈등을 예방할 참여적 의사결정과 조정·중재·협상 등 새로운 갈등관리 절차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획기적인 내용이지만 국회 권한을 침해한다는 반발에 부닥쳤다.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의 심각성에 비추어 내용을 수정해서라도 통과를 서둘러야 할 법안이다. 새 총리의 의욕적인 추진을 기대해 본다.
조홍섭/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