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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왜 공인인가?/이영자

등록 2006-03-23 18:23수정 2006-03-23 18:26

이영자 가톨릭대 교수·사회학
이영자 가톨릭대 교수·사회학
세상읽기
‘사회적 양극화’ 해소가 절박한 과제로 떠오른 이 시점에서 그 과제에만 몰두하기에도 여력이 없어야 할 고위공직자들이 ‘골프파동’이니 ‘테니스파문’으로 오히려 서민들 가슴을 뒤끓게 하다니, 역사가 모욕당하는 것만 같다. 게다가 한쪽은 국무총리였고 다른 한쪽은 서울시장인데다, 양쪽 다 대권 후보군에 속하는 인물들이라는 사실에 이르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운동권의 인물이 개발독재시대의 건설업자 출신 인물과 만나는 지점이 바로 이 대목이라니 충격일 수밖에 없다.

아직도 국민을 우습게 아는 공인들이 이 시대를 점거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 정도로 ‘사려깊지 못할’ 만큼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이 감히 공인을 자처하고 있다는 말인가? 더구나 이러한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이 나라의 고질적인 풍토병이라고 한다면, 이제라도 대대적인 체질개선을 하지 않는 한 희망을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나라에 봉사’하겠다고 나선 그 공인들은 옆 사람의 드러난 비행에 대해서는 태연하게 공인의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정작 스스로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할 일에는 뒷짐을 지고 있다. 내심으로는 이 풍토병을 ‘필요악’ 정도로 체념하거나 즐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로 이 때문에 이 병은 점점 더 면역성이 강한 전염병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면서 파급되는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 골프는 ‘권력, 위세, 부패’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외국인들도 알고 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접대골프, 내기골프, 정치야합골프는 말할 것도 없고, 단순한 스포츠 취향이라 하더라도, 공인이라면 의식적으로 골프행각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골프가 왜 나쁜가?’라는 물음에는 당신은 ‘왜 공인인가?’의 물음을 되돌려줄 수밖에 없다. 비좁은 땅덩어리를 비웃는 듯, 반환경적으로 가공된 자연을 독차지하는 것은, 설사 환경 마인드가 없더라도, 즐거움이기 이전에 최소한의 불편함과 미안함으로 다가와야 할 것이다. 더구나 공인의 신분에 남의 돈으로 내기를 하거나 또는 뒷거래의 의혹을 일으키는 골프회동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즐길 수 있다면 이는 공인이기를 포기한 것과도 같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본인은 양심을 걸고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면, 겉으로 드러난 것 이상의 더 심각한 내막이 있다는 말인가?

개발독재시대의 희생양이었던 청계천을 다시 복원하여 시민의 품으로 돌려준다는 명분 덕분에 인기 상승세를 탈 수 있었던 시장이, 그 이면에는 시민의 운동공간을 몇 년 동안 개인용으로 독점하면서 그 사용료조차 지불하지 않았고 게다가 이러한 사실들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말하다니 어처구니없기만 하다. 공공시설이 공인들의 기득권 행세를 하는 곳으로 전락한 예는 비단 이것만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몰랐다’는 얘기를 감히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뿐인가? 그동안 수없이 드러난 것처럼, 공인에 대한 접대 관행이 특혜로비와 맞물리는 사건이 이번 테니스파문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의혹들이 제기되는 것은 바로 풍토병의 심각성을 일깨워준다.

공권력을 사유화하고 정치를 돈벌이로 삼고 공직을 오직 출세의 도구로 삼아 공인의 이름 자체를 모독하는 그 풍토병이 근절되도록 국민이 다시 한번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이런 의지는 우선 다가오는 지방자치 선거를 과거보다 더 엄중한 심판대로 만드는 것에서부터 그 실체를 드러내야 할 것이다.

이영자/가톨릭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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