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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이라크 침공 3년과 ‘베트남 신드롬’/이종원

등록 2006-03-26 21:47

이종원 일본 릿쿄대학 교수, 국제정치
이종원 일본 릿쿄대학 교수, 국제정치
세상읽기
이라크 침공 3주년을 미국에서 맞았다. 대학 관계자들과의 면담을 위해 1주일 정도 워싱턴과 뉴욕을 돌았다. 대학가에서 부시 정권의 평판이 나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미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분열되고 좌절감에 빠진 고민이 도처에 역력했다. 9·11과 이라크 침공 직후의 서슬 시퍼렇고 ‘애국심’으로 뭉쳐진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한 이슬람교 신자 학생이 “무슬림이 흘린 피에 대한 대가”라고 외치면서 대학 캠퍼스에서 차로 동료 학생들을 들이받은 사건도 일어났다. 수명의 부상에 그쳤지만 “죽일 의도가 있었다”고 당당하게 조사에 답하는 모습을 방영하면서, 폭스 텔레비전의 아나운서는 증오에 찬 감정적인 언어로 사건을 전하고 있었다.

“세계 최악의 테러리스트들이 백악관을 점령하고 있다”고 부시 정권을 원색적으로 비판한 뉴욕시 형무소 담당 이슬람 사제(이맘)의 처리를 둘러싸고 뉴욕은 떠들썩했다. 당장 파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블룸버그 시장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절차상의 하자만을 문제삼아 2주일 직무정지의 경징계에 그쳤다. 표면적인 논쟁만이 아니라 대학 사회 안에서도 백인과 비백인, 미국 시민과 외국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앙금이 깊게 느껴졌다. 이라크 전쟁은 베트남 전쟁 이상으로 미국을 분열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이라크 전쟁을 중심으로 한 테러와의 전쟁에 3200억달러를 퍼붓고 지금도 매달 56억달러의 전비를 지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 상황은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 컬럼비아대학 스티글리츠 교수의 추산에 의하면 향후 10년간 미군 주둔이 필요하다고 가정할 경우 이라크 전비는 총액 2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미국이 경험한 사상 최악의 전쟁이다. 3년 전 개전 이후 미군 사망자 수는 2314명(2006년 3월25일 현재)에 이른다. 지금도 매일 아침 미군 사망자 명단이 누계와 함께 〈뉴욕 타임스〉에 게재되어 미국민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문제는 야당인 민주당을 포함해서 아무도 이렇다 할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반전 여론이 커지면서 미군 철수론이 힘을 얻고 있지만 전면 철수할 경우 이라크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내란 상태에 빠질 것은 확실하다. 부시 대통령도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철수는 장래의 미국 대통령이 결정할 것”이라고 자신의 임기 중 철수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사태의 악화는 여타 파병국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3월 말부터 지상병력의 철수를 시작해서 5월까지 완료한다는 예정을 세웠던 일본의 계획도 유동적인 상황에 있다.

물론 이라크 사태의 안정도가 미군 주둔의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 애초 동기가 석유 산출지대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발판 마련에 있다는 분석은 단순한 음모론이 아니다. 이라크 주둔 미군은 이란에 대한 견제용이기도 하다. 이라크를 발판으로 미국의 군사적 압력을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란으로 확대해 중동 전체를 재편한다는 야심적인 계획을 네오콘들은 숨기지 않고 공언해 왔다. 이 장대한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라크 사태가 미국 안 여론을 납득시킬 수 있는 선에서 안정되는 것이 필수조건이었다.

냉전 종결 이후 미국 주도의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을 지향해 온 네오콘들에게는 ‘베트남 신드롬’의 극복이 선결과제였다. 9·11 사태가 미국민의 ‘희생자 허용범위’를 극적으로 높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라크가 베트남 이상의 수렁으로 빠지면서 ‘베트남 신드롬’의 망령이 다시 미국을 뒤덮기 시작하고 있다.

이종원/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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