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쓴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에는 전쟁 말기인 1945년 2월 크림반도 얄타에서 열린 미·영·소 정상회담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얘기를 담고 있다.
“요제프 스탈린에게 ‘발칸 문제를 해결하자’며 종이에 숫자를 적어 건넸다. ‘루마니아, 러시아 90% 타국 10% … 유고슬라비아, 50-50% … 불가리아, 러시아 75% 타국 25%.’ 스탈린은 푸른색 연필로 종이에 큰 표시를 하며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 숫자는 강대국들이 소국들에 대해 각기 얼마만큼의 발언력과 우월한 지위를 나눠 가질지 그 비율을 제시한 것이었다.”
긴 침묵 끝에 처칠은 말했다. “몇백만이나 되는 사람들의 운명에 관한 문제를 이처럼 대수롭잖은 양 아무렇게나 처리해버린 것처럼 비친다면 매우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요? 이 종이 태워버립시다.” 그러자 스탈린은 대답했다. “아니, 간직해 두세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인도와 파키스탄을 찾아가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일본·오스트레일리아 외무장관을 만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고,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미국에 갈 예정이다. 대국들 사이 힘겨루기가 어지럽다.
얄타회담, 카이로선언, 포츠담회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따위 대국들의 짬짜미(담합)로 우리 운명이 결정된 불과 얼마 전의 역사적 사실들을 떠올리면 최근 대국들간 파워게임에서 오고갈 밀담들이 그들 사이에 낀 약소국들 운명에 어떤 치명상을 안길지, 몹시 불편해진다.
그 파워게임의 대표적인 희생자들인 남북의 끊임없는 반목과 불신이 애달프다. ‘납북’이니 ‘나포’니 하는 말 몇 마디, 민족 문제를 생각하면 실로 하찮은 꼬투리를 갖고 이산가족 상봉 남쪽 취재단을 철수로 내몬 북쪽의 고질적인 협량과 경직, 구제불능에 가까운 관료주의, 남쪽 일부의 단견이 절망스럽다. 그럴 시간이 있나?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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