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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경제전망대] 스파이를 키웁시다/이봉수

등록 2006-03-28 18:05

이봉수 런던대 박사·경제저널리즘
이봉수 런던대 박사·경제저널리즘
경제전망대
사상 최고위 산업스파이는 단연 러시아 표트르 대제일 것이다. 그는 네덜란드 조선소에 잡부로 ‘위장취업’을 하는가 하면, 영국에서는 공장과 병기창을 두루 살핀 뒤 귀국해 후진국이었던 러시아를 공업국으로 이끌었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미국에서 꽃피게 된 데는 면방적 기술인력의 유출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1700년대 말 영국은 기술 유출을 막으려고 방적기 수출은 물론, 기술자의 출국까지 금하는 면방업 보호 정책을 폈다. 미국의 면방업은 막대한 양의 면화를 생산하고도 낙후를 면치 못했다. 미국 정부는 신식 방적기 제작에 포상금까지 내걸었다. 일확천금을 노린 영국인 방적기술자 새뮤얼 슬레이트는 방적기계 구조를 머릿속에 샅샅이 입력한 뒤 농부의 아들로 가장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의 방적기 ‘복제’로 미국의 면방업은 비로소 도약단계에 접어든다.

삼성전자 연구원 등이 휴대전화 핵심기술을 카자흐스탄으로 빼돌리려다 적발된 사건은 우리나라도 많은 분야에서 최첨단 기술을 보유하게 되면서 산업스파이의 주요 활동 거점이 됐음을 일깨운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 집계로, 지난해부터 올 3월까지 첨단기술을 국외로 유출하려다 적발된 사례가 41건에 피해 예상액이 4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미적발 건수까지 합하면 무수하게 많은 스파이들이 ‘암약중’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번 건도 휴대전화 회로도 전달을 부탁받은 사람이 제보하지 않았더라면, 삼성의 기술개발 투자와 연구원들의 노고와 땀이 증기처럼 날아갔을 것이다.

합법적 기술유출 통로는 국외공장 건설이나 이전이다. 한국기업이 선두를 달리는 전자·조선 업종 등에서 특히 중국 진출이 활발한데(<한겨레> 4일치), 이는 장기적·국민경제적 견지에서 우려되는 점이다. 몰려드는 수주물량을 대려고 노동력이 싸고 풍부한 중국에 현지공장과 조선소를 건설한다지만, 공정의 전면노출에 따른 기술유출 문제를 경시한 느낌이 든다. 선진국에 건설하거나 이전하는 공장은 그나마 시장개척과 현지생산의 의미가 강하지만, 바로 뒤쫓아오는 나라에 지어주는 첨단공장은 기술격차를 따라잡는 공격 캠프가 될 수 있다. 눈앞의 개별기업 이익이 장래의 산업경쟁력 상실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왜 한국의 전자·통신·자동차 등을 투자장려 업종으로 꼽고 대출까지 해주면서 적극적으로 유치하려 하는지, 합작기업의 경우 왜 기술이전과 연구소 설립을 고집하는지, 그 속셈을 우리도 헤아려야 한다.

영화 ‘007 시리즈’의 스파이로 유명한 영국의 정보조직은 일찌감치 이원화해, 국외정보 수집(MI6)과 같은 비중으로 국내정보 보호(MI5)에 신경 썼다. 냉전이 끝난 뒤에는 경제정보 수집과 보안을 주요업무로 명시해놨다. 최고권력자 직속이 아니고 외무부와 내무부 관할 아래 있는 점도 우리와 비교된다. 한국의 정보기관은 대통령 직속으로 편제돼 정치정보 수집에 열중함으로써 오히려 부정부패와 독재를 가능하게 하고, 정보기관 자체가 권력기관화하는 폐단이 있었다. 국정원을 다른 부처와 마찬가지로 총리에 귀속시키는 것은 국방부나 외교통상부는 물론이고 경제부처들과 원활한 정보교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과거 대통령들의 엽색행각이나 연인들까지 ‘관리’하면서 들어왔던 오명도, 경제전쟁 시대에 경제정보 수집과 보안에 주력함으로써 씻어버릴 수 있으련만 …. 정치인들 약점이나 캐고 다른 기업들 기술이나 빼내는 차원의 스파이가 아니라, 세계 경제정세에 능하고 산업스파이에 대응하는 신개념의 스파이를 정부와 기업이 양성해야 할 때다.

이봉수/영국 런던대 박사·경제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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