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유신 시절 박정희 정권은 대미 로비를 위해 박동선씨와 김한조씨를 고용했으나 미국내 여론만 악화시켰다. 재미 언론인 김명자씨는 회고록에서 특히 김씨를 사기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의 유력인사들이 출입하는 워싱턴의 유명한 프랑스 식당 입구에 앉아 오가는 유명인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도 오가면서 인사를 건네는 서양 풍습에 불과했으나, 그는 마치 그들과 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한국 정부 인사들을 현혹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와 정권교체의 바람이 몰아치던 1997~98년 시중에는 대표적인 로비스트들을 지칭해 ‘3대 나카마(거간)’ ‘4대천왕’이라는 말들이 떠돌았다. 서울시 고위관료를 지낸 김아무개씨,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 친인척과 정계인사들을 구워삶았던 최규선씨 등이 입길에 올랐다. 애초 김아무개씨의 수하에 있던 최씨는 스승을 능가하는 거물로 성장해 ‘청출어람’이란 말을 듣기도 했다.
최근 구속된 김재록씨도 최씨와 함께 신세대 로비스트로 평가됐다. 인맥과 뇌물만을 이용해 접근하던 구세대 로비스트와는 달리 이들은 기획력과 국제적 활동 역량을 자랑했다. 외환위기 뒤 외자가 급했던 당시 이들은 대한 투자능력을 갖춘 미국 펀드들과 그 매니저를 한눈에 보여주는 자료 등을 신속히 만들어 실력을 보여줬다고 한다. 검찰이 김씨의 탁월한 기획력과 영어 실력을 높이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요즘 떠들썩한 론스타 사건의 숨겨진 핵심은 외환은행 매입금이 어디에서 왔느냐는 것일 수 있다. 한국에서 돈 가진 쪽들은 여러 법적 제약으로 외환은행을 살 수 없었고, 자격이 있는 쪽은 돈이 없었다. 그리고 외국의 유력 은행은 관심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명 펀드인 론스타가 등장했다. 검찰 수사가 단순히 론스타의 탈세 문제에 국한될지, 아니면 더 나아갈 수 있을지는 이들 신세대 로비스트들의 중개 역량과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다.
정의길 국제팀장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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