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Hyo-sun, Executive Editor The Hankyoreh
김효순칼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오늘로 재임 1807일을 맞아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를 제치고 역대 3위의 장수 총리에 오른다. 일본 정계의 ‘괴짜’로 간주돼 기존의 자민당 파벌구조에서는 총리직에 오를 전망이 별로 없었던 그가 이달 26일이면 취임 5돌이 되니 대단한 기록이다.
그는 오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를 기점으로 물러나겠다고 진작 공언했지만, 후계자의 조건에 대해 언급하는 등 높은 지지율에 힘입어 고삐를 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 정치무대에서 그의 존재는 사실상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지도자들이 그가 나오는 정상회담을 꺼리기 때문이다. 세 나라가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이즈미 ‘제쳐놓기’ 현상이 공공연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 경제대국의 지도자가 정상외교 무대에서 기피인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일본의 책임이 가장 크다. 고이즈미를 비롯해 그의 내각 주요 인사들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대놓고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본이 이룬 경제적 번영이 전몰자들의 희생 위에 건설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순수하게 추모하는 심정에서 참배를 한다는 주장을 하지만, 우경화 색채를 집요하게 강화하고 있는 교과서 검정 결과를 보면 그런 변명은 공허하게만 들린다.
우려스런 것은 고이즈미의 시대착오적 고집 때문에 이 지역의 민족주의적 대립이 격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후청산과 관련된 사안의 성격상 대립구도 설정이 불가피하다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차분히 대응하자는 차원에서 몇 가지 짚어볼 대목이 있다.
첫째, 고이즈미의 후계자 선출이 일본의 내정이 아니라 이미 이 지역의 공동관심사가 됐다는 점이다. 야스쿠니 참배를 비난하는 한국과 중국의 자세에 대해 고이즈미나 그의 수구적 후계자들이 펼치는 논리는 동일하다. 참배는 마음의 문제이므로 타인의 참견을 받을 일이 아니고, 문제가 있다고 해서 정상 사이 대화창구를 닫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여러 통로로 일본 인사들을 불러 신사참배를 계속하는 한 정상적 관계 발전은 있을 수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하고 있다. 참배에 부정적이거나 유보적인 일본인은 당·정의 최고위급 인사가 맞이하고, 참배를 합리화하는 사람은 영접인의 격을 낮춰 차등을 둔다. 한국은 중국처럼 노골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중순 참배 신중파인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 등을 접견한 것은 같은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둘째, 한·중의 ‘간여’가 곧 본격화될 일본의 후계자 경쟁구도에 끼칠 파장이다. 일본의 민족주의적, 배타적 정서를 더욱 달아오르게 할지, 아니면 나라의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유도하게 될지 예단하기 어렵다. 현시점에서는 참배파 아베 신조 관방장관의 독주 기세가 일단 꺾였다. 최근 <마이니치신문>에서 조사한 바, 아베 장관과 후쿠다 전 관방장관의 지지도 격차가 지난 1월의 28%포인트에서 18%포인트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시아의 이웃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일본 사회의 화두가 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셋째, 일본내의 세대 갈등 측면이 얽혀 있다. 1954년 9월생인 아베는 전쟁 경험이 있는 노장 정치인들의 눈에서 보면 아직 ‘청년 정치가’다. 그래서 그의 급격한 부상을 견제하려는 모습도 역력히 보인다.
고이즈미 후계 구도는 국제적 관심사가 됐을 뿐만 아니라 다층적 의미를 갖고 있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미래를 생각하는 관점에서 후계 경쟁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김효순 편집인 hyos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