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논설위원
아침햇발
성공 신화라면 사족을 못 쓰는 세태에 넌더리가 났던지라, 하인스 워드의 방한을 두고도 시큰둥했다. 이미 체념한 혼혈인들의 가슴을 한바탕 헤집고 떠날 것이고, 그러면 남은 이들의 허탈감만 더욱 깊어질텐데 …. 그랬는데, 워드가 한국에 머물던 지난 9일 동안 나는 공연히 행복했다. 아들이 박지성 이영표 선수한테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인터넷 뉴스포털에까지 워드의 이야기를 찾아나섰다.
방한 첫 기자회견 때 혼혈인 차별을 묻는데, 그 대답부터 작은 충격이었다. “무언가 바꾸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저를 한국인으로 받아주시는 것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도대체 그가 고마워할 게 무엇일까? 구약의 요셉은 이복 형들 손에 노예상인에게 팔렸다. 애굽에서 바로의 꿈을 잘 풀이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뒤 재정을 총괄하는 총리가 되었다. 팔레스타인에 기근이 들어 형제들은 애굽으로 피난왔다. 요셉은 이들에게 정착지와 가축을 주었다. 이때 요셉은 형들이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사죄하는 과정을 밟도록 했다.
반면, 워드는 형제들이 깨닫고 반성할 때를 기다리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형제와의 만남을 눈물로 감사하고, 한때 이들을 원망했던 것을 사과했다. 그다지 자랑스럽지도 않은 서울 명예시민증을 받는 자리에서였다. “어릴 때 한국인으로 태어난 걸 부끄러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그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다 눈물을 쏟았다.
사실 그가 흘릴 눈물이 아니었고 그가 해야 할 사과도 아니었다. 무방비로 세상에 던져진 그에게 “흑인 친구들은 한국인이라며 따돌렸고, 백인 친구들은 흑인 혹은 한국이라고 멀리해” 그는 참으로 힘들고 외로웠다. 그를 감싸야 할 한국인들은 흑인이라며 따돌렸다.(8일 펄벅재단)
그러나 형제들의 잘못을 탓하거나 심판하지 않았다. 그들이 숨기려 했던 치부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성공하자 환호하는 이들의 천박함을 꼬집지도 않았다. 그저 순정한 눈물로 티끌만큼도 안 되는 자신의 허물을 고백했다. 펄벅재단에서 만난 일곱살 아름이에게 한 이야기는 아직도 가슴을 울린다. 아저씨가 보고 싶다며 편지까지 했던 아름이었는데, 그가 정작 눈앞에 나타나자 눈물을 터뜨리며 엄마 품으로 파고들었다. 워드는 조용히 달랬다. “아이야, 이리 오렴, 수줍은 아이야 이리 와. 이젠 울지 마라!”
꼭 저만한 나이였을 때 워드가 사무치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이리 오렴, 워드야. 이제 울지 말아야지!’ 유대인들은 풀잎 하나에도 천사가 있어, 이렇게 속삭인다고 믿었다. ‘잘 자라라, 잘 자라거라!’ 그날 워드는 아름이의 천사였다.
그의 풋볼팀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연고지에서 발행되는 〈피츠버그 포스트 가제트〉는 9일 그를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견주며, “폐쇄적인 한국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 물론 그는 킹 목사처럼 수십만명의 평화대행진을 조직하지도, 기념비적인 연설도 하지 않았다.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한국에 머문 열흘 사이에 정치권은 혼혈인 차별금지는 물론, 교육과 취업 등에서 이들을 보호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킹 목사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토록 하는데는 10년이 걸렸다. 이런 변화를 가져온 힘은 무엇일까?
마침 꽃들이 폭죽 터지듯 피고 있다. 맵고 찬 겨울을 이기고 핀 꽃들이기에 더욱 찬란하고 아름답다. 하얀 매화 벚꽃 목련 그리고 검은 워드 …!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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