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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목숨까지 요구하는 사회 / 김상종

등록 2006-04-14 21:13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객원논설위원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객원논설위원
아침햇발
자폭 테러리스트, 죽음의 문턱에 이르도록 단식을 한 지율 스님, 129일 동안 고공에 매달려 농성한 끝에 자살한 노동자. 무엇이 그들을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하도록 만들었을까? 절망감, 상식적인 방법으로는 아무것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깊은 절망감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석유시장을 지배하려는 욕심에서 국제 여론의 비난에도 아랑곳없이 남의 나라를 침략해 점령하는 폭력 질서, 법에 정해진 대로 환경영향 평가를 제대로 하라는 요구를 무시하는 정부 당국,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지 않는 노동조건, 특정 문제를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속수무책이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 아래서는 자신을 희생하는 마지막 방법까지도 선택하게 만든다. 무언가 잘못 돼도 크게 잘못된 사회다.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의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으리라 여겨진다. 이 발언은 단순한 권력누수 현상으로만 볼 성질이 아니다. 정권 창출을 도와 권력 핵심에 참여하였던 인물이 개혁 실패의 원인을 밝힌 용기 있는 내부고발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권을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실력이 없고 준비가 안 되어 개혁의 대상인 관료집단과 재벌그룹에게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는 고백이다. 이 결과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을 뽑아준 사회적 약자들에게 집값 폭등, 노동조건 악화와 같은 피해를 우선적으로 주면서도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배척을 받고 있다.

돌이켜보면 강남 아파트값 폭등 대책 수립을 그 수혜자들에게 맡긴 사례에서 보듯이 노 대통령의 인재 활용과 국정운영 시스템에서 준비된 면모는 찾기 어려웠다. 황우석 전 교수의 논문에 무임승차하면서 연구비를 몰아주어 공직자의 신종 향응 유형을 만들어내며 국제적인 물의를 빚어 온 박기영 전 청와대 보좌관에게 국가 연구개발사업 관리를 계속 맡겨왔다.

새만금 사업에 환경단체와 함께 앞장서서 반대하던 학자를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장에 앉혀놓고 대통령이 먼저 새만금 사업 방향을 결정해 위원회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 환경단체는 지속가능발전위원회와의 관계 단절을 선언했고, 그 위원장은 2년 임기가 끝난 후에 새만금 반대 운동을 하는 환경단체 곁으로 다시 돌아갔다.

수도권 인구 분산정책을 원칙적으로 지지하는 환경론자 처지에서 볼 때도 균형발전위원회가 추진하는 행정도시 이전 같은 정책의 효과에 대해 과문한 탓인지 잘 모르겠다. 인구 집중은 환경오염, 교통, 교육 등 다른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시키므로 해결해야 될 핵심 과제로는 맞다. 그러나 행정도시를 만드는 한편, 그린벨트와 녹지를 없애가며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억제했던 수도권 대형 공장 건설과 경유 승용차 판매를 허용하였다. 수도권 대기오염의 원인은 경유 자동차가 주범이라는 환경부의 진단이 있는데도 말이다. 결과적으로 수도권 인구분산과 환경오염 문제 해결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현정권에서 관료와 자문위원의 수는 늘어났지만 전체를 보는 국정 조정기능은 실종되어 버렸다는 증거들이다.

이제 또 선거철이 시작되었다. 여러 두뇌집단 그룹들의 활동이 시작되고 있다. 간곡히 당부한다. 아무리 이미지 정치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실현도 안 될 ‘빈 공약’을 만드는 데 주력하지 말고 주요 정책을 실현시킬 구체적인 방법론을 현실적으로 고민해주기 바란다. 특히 기득권 세력의 두꺼운 벽과 맞서야 할 진보진영에게는 더욱 절실한 문제다. 절망감으로 자신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사람들이 더는 나오지 않는 세상이 되도록 이들에게 희망의 싹을 키워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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