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수 논설위원
아침햇발
역대 선거에서 출마한 후보들의 이미지 전략이 시비의 대상이 됐던 경우는 드물다. 각 후보가 선거 전략에 따라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면 됐지 상대방의 전략을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후보들 간에 일종의 불문율로 간주됐다. 후보가 보라색 넥타이를 매든 녹색 넥타이를 매든 그것은 전적으로 후보의 개인적 취향에 속하는 문제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의 유력한 후보로 등장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오세훈 전 의원에 대한 이미지 공세는 두 사람의 이미지 전략이 상대적으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물론 두 사람의 초반 강세가 막판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이미지만으로는 두 사람의 지지도가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미지 못지않게 후보의 자질과 노선, 소속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호감도, 정책 등도 유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후보의 이미지가 정책 또는 정치적 노선과 부합하지 않으면 역효과를 가져온다. 이미지 위주의 선거 전략은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1995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박찬종 후보의 경우가 좋은 사례다. 청렴하고 깨끗한 이미지가 무기였던 박 후보는 ‘무균 박찬종’ 전략을 구사해 초반에 선두를 달렸다. 그러나 중반 들어 유신 찬양 전력이 폭로되면서 그의 지지도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민주당의 조순 후보에게 패배했다. 모성애적인 부드러움과 상생의 이미지로 인기가 높았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도가 크게 하락한 것은 국가보안법 폐지와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전투적이고 비타협적인 노선을 택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는 이미 ‘이미지 정치’의 자장 속에 들어와 있다. 정치인의 ‘콘텐츠’보다 이미지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좌우하는 감성정치의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선거운동이 영상매체인 티브이와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이런 현상이 가속화했다. 또 정치인이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 일인 매체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할 수 있게 된 것도 한 요인이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정치적 부상도 이런 정치현실의 산물이다. 전체 유권자의 50%에 육박하는 20~30대 유권자들에게 정치인의 이미지는 정당보다도 상위개념이다.
이는 정당정치의 위기이자 민주주의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이미지 정치는 거역할 수 없는 시대 흐름이기도 하지만 정당들이 화를 자초한 면도 있다. 한국의 정당에는 역사가 없다. 선거 때마다 급조됐다가 사라지곤 했다. 정책도 빈약하고 정당 간 차별성도 희박하다. 정당에 대한 거부감이 극심하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정당보다는 이미지가 좋은 정치인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유권자들을 탓하기에 앞서 정당들의 자성이 시급하다.
이미지 정치는 언론이 부채질한 측면도 많다. 정치인의 지엽말단적인 스타일을 세세하게 보도하는 반면 자질이나 언행은 소홀히 다뤘다. 박근혜 대표에 대한 보도가 그 전형적인 예다. 일부 언론은 그가 왜 올렸던 머리를 내렸는지, 왜 바지를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 나타났는지 등 시시콜콜한 보도에 열을 올렸다. 마치 패션잡지를 방불케 했다. 바로 그 언론들이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보라색 상징에 시비를 걸고 나서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최근의 이미지 논란에 정치적 저의가 깔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장정수 논설위원 jsj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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