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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멀고 먼 재벌혁신 / 조태훈

등록 2006-04-17 21:32

조태훈 / 건국대 경영대학장
조태훈 / 건국대 경영대학장
기고
재계 서열 1·2위인 삼성과 현대기아차 그룹의 이건희·정몽구 회장이 국민에게 두루 재벌의 실상을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다. 이들의 존재방식과 리더십 스타일, 그리고 이들이 이끄는 삼성과 현대차 그룹의 위기대응 방식과 능력에는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다. 그러나 도피성 출국과 귀국을 계기로 이들이 보여주는 재벌의 본질적 사고와 속성에는 차이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

첫째, 무한한 대물림 집착이다. 대물림에 대한 한국의 사회적 생각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개인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일도 늘어난다. 최근 우리는 잘못된 대물림으로 창창하던 대기업이 하루아침에 줄줄이 망하는 것을 봐 왔다. 쌍용, 한일합섬, 대농, 진로 등이 그렇다. 외국 선진국에서, 기업을 무조건 대물림하는 전통이 없어진 지 오래다. 그렇건만 우리 재벌은 어떤 무리수를 두든 자식에게 가업을 이어받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절대적인 명제로 삼고 있다. 자식에 대한 원초적 본능 앞에 기업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은 없다.

둘째, 상속세를 내지 않고 그룹을 물려주고자 갖은 꾀와 요술을 부린다. 필요하면 증여세는 낸다. 종잣돈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고는 비상장 회사를 이용한다. 모든 일거리와 물량을 싸거나 비싸게 몰아주어 엄청난 부당이익을 취하게 한다. 이에 더하여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몰아준다. 외견상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보면 편법, 탈법이 확실해진다. 많은 선량한 일반 투자자와 주주들이 손해를 본다. 이것은 배임이며 죄가 된다.

셋째, 엄청난 검은돈을 비축하여 안 되는 일이 없도록 보이지 않게 손을 쓴다. 오랫동안 재벌그룹에서 유능한 사장의 가장 중요한 생존 및 장수 조건은 쥐도 새도 모르게 총수에게 검은돈을 가장 많이 갖다 바치고, 그러고도 장부상으로 이익을 많이 내는 것이었다. 생명을 건 검은돈 창출능력 경쟁이 불을 뿜을 수밖에 없다. 차떼기, 사과상자, 007가방의 현찰전달이 세상에 알려질 확률은 마른하늘에 벼락 맞을 경우보다 적다.

넷째, 총수는 절대 왕이다. 그의 위력은 인사권을 통해서 가장 피부로 느끼게 표출된다. 아침에 기분 좋게 출근했다가 오후에 단칼에 잘리는 경우도 있다. 생살여탈권자의 심기를 건드리면 즉시 나락으로 떨어진다. 부회장, 사장 등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큰 고목나무 꼭대기의 잔가지에 매달린 청개구리 신세다. 자율·독립·투명 경영과 직언은 설 자리가 없다.

다섯째, 황금만능주의에 바탕을 둔 선민의식이다. 이제 ‘걸핏하면’ 거액 사회헌납 얘기가 나온다. 반성, 사죄, 재발방지 약속이 없는 ‘돈벼락’은 국민을 무시하고 모독할 뿐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또한 공항에 수백 명의 경호원이 삼엄하게 호위하는 것도 자유시장경제 시대 기업인의 모습이 아니다. 무엇보다 총수가족 모두 ‘로열 패밀리’란 말이 나오지 않게 국민 앞에 낮고 가까이 다가가는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재벌개혁 되었다는 게 이 모양인가’ 하는 국민의 자탄과 질책이 빗발치고 있다. 편법상속, 비자금, 사익을 위한 불법·부당거래 등이 여전하다. 존경받는 기업과 기업인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총수의 대국민 선언이 필요하다. 반성, 속죄, 과거와의 단절, 21세기형 경영체제 구축방안을 담은 혁명적 자율혁신 청사진을 가지고 총수들이 직접 국민에게 약속하는 성의가 필요하다. 약속이행 여부는 그래도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는 검찰과 법원이 지켜주면 된다. 마침내 참된 재벌혁신의 여명이 밝아오려나.

조태훈 / 건국대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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