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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홍섭칼럼] 강 하구의 죽음

등록 2006-04-19 21:26수정 2006-04-19 22:03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조홍섭칼럼
강 하구 또는 포구는 민물과 바닷물이 몸을 섞어 생명의 풍요로움을 낳는 곳이다. 풍부한 수산자원과 편리한 뱃길을 보고 일찍부터 사람들이 이곳에 몰려들었다. 산업화가 가장 먼저 이뤄진 곳도 여기다. 그 바람에 노을진 갈대밭과 모래언덕 위로 철새들이 날아가는 강하구 특유의 고즈넉한 풍광은 이제 거의 보기 힘들어졌다. 영산강, 낙동강, 금강이 차례로 1980년대에 하굿둑으로 막혔고, 만경강과 동진강은 자연하천으로서의 수명을 며칠 남겨놓지 않고 있다. 섬진강에는 매립과 개발에 이어 지나친 골재채취와 취수로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개발압력이 높은 수도권에서 유독 한강하구가 오롯이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은 분단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한강 하구에도 둑은 아니지만 물흐름을 제한하는 보가 가로놓여 있다. 88년 만들어진 신곡수중보는 노량진까지 거슬러오르던 바닷물의 흐름을 김포대교 근처에서 가로막는다. 그 생태적 악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곡수중보가 준 선물도 있다. 최근 습지보전 지역으로 지정된 장항습지가 그것이다. 수중보의 수문이 김포 쪽에 나 있는 바람에 홍수 때 쓸려나온 퇴적물이 고양 쪽 한강변에 쌓여 너른 개펄과 둔치를 만든 것이다. 이곳의 버드나무 숲이 수령 20년 이하의 어린 나무로 이뤄져 있음은 그런 생성역사를 보여준다. 신곡수중보가 없었다면 장항습지도 없었을 것이다.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73년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남한강과 북한강, 경안천이 만나는 경기도 광주군 일대의 하천변 농지와 저지대가 물에 잠겼다. 이곳은 그 뒤 20여년이 지나면서 독특한 습지로 바뀌었다. 흔히 경안습지로 부르는 이곳엔 아기부들, 줄, 달뿌리풀, 연꽃, 마름 등 수생식물이 잘 발달해 여름철새와 텃새의 낙원이 됐다. 흥미로운 건, 팔당상수원의 수질을 위협하는 경안천 하류에 두텁게 깔린 퇴적물과 정체수역이 오히려 독특한 습지 생태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이다.

장항습지와 경안습지의 사례가 자연훼손을 정당화하는 핑계가 될 수는 없다. 수중보나 댐을 지을 때 귀중한 도시습지가 생길 것을 예측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안보나 상수원 보호용 철조망이 이곳의 자연을 되살리는 결정적 요인이었을 것이다. 자연의 생명력은, 사람들의 손길이 세심하고 주의깊다면 뜻밖에 강하다는 사실을 이 사례는 보여준다. 그래서 방조제로 막힌 개펄이 놀라운 염생습지로 탈바꿈한 시화호에서의 무모한 개발계획과 새만금 간척지에서의 공허한 ‘친환경 개발’이 걱정스러운 것이다.

대형 덤프트럭과 바지선에서 집채만한 돌과 돌망태를 퍼붓고 있는 새만금 방조제 공사는 이제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오는 23일쯤엔 33㎞ 길이의 방조제가 완성될 전망이다. 또 하나의 자연성을 간직한 대규모 강하구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 첫 영향은 이곳을 중간 기착지 삼아 시베리아·알래스카와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를 오가는 도요새·물떼새들에게서 나타날 것이다. 동아시아 최대의 도요·물떼새 도래지인 새만금 개펄의 축소가 이들의 이동과 번식에 어떤 타격을 줄 것인지를 한국·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캐나다·미국·영국의 조류연구자들이 살피는 장기조사가 최근 시작됐다. 아마 그 첫 희생자는 장거리 여행자인 큰뒷부리도요일 가능성이 높다. 뉴질랜드에서 며칠 밤과 낮을 쉬지 않고 9100㎞를 날아온 이 새는 새만금 개펄에서 몸을 갑절로 불려야만 시베리아나 알래스카로 날아가 번식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휴게소는 이제 문을 닫았다.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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