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중국 사상가 리쭝우(1879~1944)는 후흑교주로 불린다. 유교사상에 맞서, 인간의 근본은 ‘인의예지’가 아닌 ‘후흑’에 있다고 했다. 마오쩌둥이 후흑학을 탐독한 뒤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다는 말도 있다. 후흑은 면후심흑(面厚心黑)에서 온 말로, “낯두껍고 속마음이 시커멓다”는 뜻이다. 그는 군자와 영웅의 길은 후흑의 도를 닦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항우가 천하를 얻지 못한 것도 후흑이 부족해서라고 한다. 유방을 제거할 수 있었을 때 아량을 베풀어 후한을 남기고, 해하 패배의 수치를 견디지 못해 자결한 건 이 탓이란다.
리쭝우는 후흑의 도를 3단계로 나눴다. 1단계는 ‘낯이 성벽처럼 두껍고, 속이 숯처럼 시커먼’ 수준이다. 이 단계만으로는 안색이 혐오스러워 사람들이 접하길 꺼린다. ‘낯이 두꺼우면서 딱딱하고, 속이 검으면서도 맑은’ 2단계에 이르면, 어떤 공격에도 미동 않고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다. 유비와 조조를 이 단계에 이른 영웅으로 든다. 3단계는 ‘낯이 두꺼워도 형체가 없고, 속이 검어도 색채가 없는’ 경지다. 이 경지는 옛 대성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뻔뻔하고 음흉해지라는 요사한 잡학으로 들리나, 참뜻은 후흑 구국론에 담겨 있다. 후흑을 사리를 얻고자 쓰면 극히 비열하고 결국 실패하나, 공리를 위해 사용하면 지극히 높아지고 성공도 얻는다고 말한다. 사리를 꾀하면 타인의 사리를 방해하고 적이 많아져 실패할 수밖에 없고, 공리를 도모하면 수천만이 지원할 테니 성공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덧붙인다.(〈난세를 평정하는 중국 통치학〉 부분 인용)
재벌가, 정치인, 고위 관료, 경제 전문가들의 비리와 일탈이 검찰 수사 대상이나 입방아에 올랐다. 아직도 한국이 이 수준인지 자괴감마저 든다. 리쭝우가 살아 있다면, ‘모두 공리를 도외시하고 사리만 채우려 한 후흑의 비루한 오용’이라고 질타했을 듯하다.
김병수 논설위원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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