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창
중국 속담에 “먼 친척이 이웃사촌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도 있다. 이는 이웃 또는 이웃나라에 대한 중국 민간의 관점을 대변한다.
중국은 자신을 ‘위대한 큰나라’라고 여겨 스스로 ‘대중국’ ‘대중화’라고 부른다. 중국의 이웃나라는 모두 작은 나라들이다. 중국인들은 한국·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파키스탄 등 대다수 이웃 인민을 큰형이 아우들 바라보듯 ‘우애’와 ‘자비’의 눈길로 바라본다.
중국의 역사 교과서에서 작은 이웃나라들은 모두 대중국의 속국들이다. 이들은 조공을 바쳤고, 대중국의 보호를 받아들였다. 대중국의 군대가 이웃나라에 출병할 때는 침략이 아니라, 큰형이 아우들의 반란이나 분쟁을 평정해주려고 가는 것이다. 결국 모두 평화를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수·당이 고구려에, 청나라가 조선에 출병한 일을 모두 이렇게 해석한다. 진실이든 아니든, 이웃나라가 받아들이든 않든 상관하지 아니한다. 이런 식의 역사 기술이 중국 민중의 허영심을 만족시킨다.
중국 민간의 대중국 허영심은 나라의 외교정책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1950년대 인민지원군의 한반도 출병이나 60년대의 베트남 출병을 두고 중국 민중은 “약소한 이웃나라를 미제국주의의 침략에서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강호의 표현을 빌리자면 “벗을 위해 양 옆구리에 칼을 맞은” 것이다. 당시 중국은 자기 문제가 산더미 같았음에도 호걸 기질 하나로 버텼다.
최근 중국은 경제 성장의 결과 이웃나라를 도울 처지가 됐다. 북한을 돕거나 아시아 금융위기 때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서민들은 이견이 없다. “양 옆구리에 칼을 맞는” 거야 호걸의 기본 아닌가. 대중국의 이런 호걸 기상은 일본 때문에 몇 차례 좌절됐다. 중국 백성들은 일본을 즐겨 ‘소일본’이라고 부른다. 명나라 때 일본 낭인들은 중국 연해에서 살인·방화·약탈을 일삼았고, 청나라 때 일본 해군은 북양해군을 전멸시켰다. 2차대전 때 일본군은 중국을 8년이나 점령했다. 이 때문에 중국 민중은 일본에 대한 친근감이 적다. 정부는 늘 중·일 두 나라가 우호국이라고 말하지만 여기에 동의하는 민간인은 극소수다.
중국 백성의 시각에서 한국은 약간 독특하다. 중국의 이웃이란 모두 ‘아우 나라들’ 아니면 ‘소일본’ 정도였는데, 갑자기 ‘강대한 한국’이 떠올랐다. 한국은 더 도움이 필요한 아우 나라도 아니고, 막아야 할 적대국도 아니어서 매우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국인들은 일본 대사관 앞에서 손가락을 자르며 독도 수호를 결의한다. 한국 정부의 공용 차량은 모두 국산이다. 중국 민중은 이런 점에 탄복한다. 중국 민중과 지식인들은 모두 “한국인과 같은 강렬한 기백이 중국인에겐 없다”고 탄식한다. 심지어 한국 관리들의 부패에 대해서도 중국인들은 ‘탄복’한다. 한국의 최고위관리가 2만달러 정도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걸 보며 중국 백성들은 “그게 무슨 부패냐, 그 정도 돈이야 중국 시골정부의 간부들이 늘 해먹는 것보다도 작은 것 아닌가”라고 한다.
최근 중국인의 마음에 유일하게 비판적인 시각이 일었던 건 2002년 한-일 공동 월드컵이었다. 한국의 4강 진출은 동아시아 중국 형제들을 흥분시켰다. 특히 이탈리아가 한국에 격침당한 ‘사건’은 이탈리아 축구팬이 많은 중국에서 거대한 논란을 빚었다. 이렇게 죽도록 달리는 동아시아의 이웃사촌은, 중국인들이 보기엔 지금도 맹렬히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저우창이/중국 월간 <당대> 편집인
저우창이/중국 월간 <당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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